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불편한 진실은 모든 사람이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우리 생활 주변에서는 이 당연한 원리를 망각하거나 무시하는 주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성장과 분배의 우선순위와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있고, 원하는 것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는 맞교환 관계(trade off)는 경제 문제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현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맞교환 관계는 쉽게 발견된다. 가장 일반적인 맞교환 관계는 가격과 품질의 상관관계다. 질 좋은 물건은 가격이 비싸고, 가격이 싼 물건은 품질이 낮다. 누구든지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원하지만 결국에는 가격과 품질을 놓고 저울질해야 한다.
경제학의 연구 결과는 효율과 형평, 성장과 분배 사이에도 이 같은 상충 맞교환 관계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성장촉진 정책이 분배를 악화시키고 소득 재분배 복지 정책이 성장률 저하를 초래하는 괴로운 상충관계는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당연한 현상이고 실제로 국내외의 많은 경험은 이 원리가 대체로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원리에서 벗어난 사례가 가끔 학계에 보고되고 있지만 대부분 예외적이거나 특수한 전제 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볼 때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의 선택을 놓고 우리나라에서 요즘 진행되는 논쟁은 다소 비전문적인 이념 갈등에 가까워 보인다. 성장 없는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복지 없는 성장은 무의미하다.
현명한 소비자는 주어진 예산을 가지고 최고의 품질을 가진 상품을 구입하려고 노력한다. 아니면 원하는 최소한의 품질 수준을 정해 놓고 이를 가급적 싼 가격에 구입하려고 노력한다.
현명한 투자자는 원하는 수익률을 정해 놓고 이를 만족시키는 가장 안전한 투자 수단을 찾는다. 또는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험 부담을 미리 정해 놓고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고자 한다. 수익성과 안정성이든, 품질과 가격이든 상충관계가 있는 가치를 놓고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 원리는 학술적으로 표현하자면 ‘제약조건 하의 최적 선택’인 것이다.
따라서 성장과 분배에 관한 우리 사회의 합리적 의사결정 원리는 완전고용이나 물가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성장률을 전제해 놓고 이 성장 속도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복지를 추구하는 복지 정책을 강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는 뒤집어 말해 우리 사회가 현 상태에서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복지 수준을 설정해 놓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성장 속도는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지를 강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성장이냐 분배냐의 이분법적 논쟁은 마치 두 사람의 투자자가 한 사람은 투자 수익률 극대화가 중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투자의 안정성이 중요하다고 우기는 것처럼 무의미한 논쟁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과 분배가 양립 가능하다거나 성장과 분배를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고의 품질을 최저가에 구입한다는 주장과 같이 말은 맞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종의 말장난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지 수준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복지 수준을 유지하면서 우리 경제가 달성할 수 있는 최고 성장 속도는 얼마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조만간 도래하게 될 노령화 사회에 대비해 그 이전에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경제발전 수준은 얼마이고 이를 위해 앞으로 어느 기간 동안 어떤 속도로 경제성장을 달성해야 하는가를 미리 생각하면서 우리가 지금 추구해야 하는 가장 적절한 복지 수준은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건설적이고 실사구시적인 논의라고 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 논쟁이든, 양극화 논쟁이든 이제는 정략과 이념보다 차분한 과학과 논리의 영역으로 토론의 수준을 높여야 할 때다.
김종석 한반도선진화재단 부민경제연구소장
홍익대 경영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