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국민일보-경제시평] 정부규제, 품질이 문제다
 
2013-02-22 10:05:54


[경제시평-김종석] 정부규제, 품질이 문제다
2013.02.05 17:16



 


정부규제는 세금과 같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세금 없는 정부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규제 없는 정부도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규제를 ‘감추어진 세금’이라고 한다. 어떤 규제든 국민 입장에서는 지키려면 돈과 시간, 노력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규제는 사실상 세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규제와 세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금은 납세자들이 현금국가에 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과 집행이 엄격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과도한 경우에는 조세저항도 뒤따른다. 그러나 정부규제는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도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민이 그 규제로 인해 져야 하는 부담이 얼마인지, 정말 기대효과는 있는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통제나 점검 없이 만들어지고 그냥 집행된다.

더구나 주무부서가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알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규제 집행부서에 사실상 규제의 입안부터 집행까지 권한이 대부분 위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부규제가 집행자 편의 위주로 절차와 기준이 정해지고, 국민이 져야 하는 부담이나 부작용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도입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정부규제가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가지게 된 배경이다.

과거에 규제완화 또는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추진된 많은 조치들이 사실은 기업들의 규제비용을 낮춰 주는 일종의 감세처분인 경우가 많았다. 불법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낮춘다든지, 정기검사를 면제해 준다든지, 구비서류를 줄여 준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 결과 규제개혁이 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국민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기업 민원 해소 차원의 행정서류 절차 개선과 고비용 저효율의 정부규제를 개선하는 차원의 규제개혁은 구분되어야 한다.

규제가 많다고 하니까 그 대책으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휘 선택의 잘못으로부터 초래되는 착각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정부규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들, 특히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면 특별히 더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이,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규제가 심해서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는가. 그것은 우리나라에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정부규제의 품질이 저질이기 때문이다.

정부규제의 품질은 여러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규제에서 기업인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을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부규제와 제도의 불투명성이다. 많은 정부규제 제도가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행정지도의 명목으로 법에도 없는 간섭과 지시가 많다. 모든 것이 공무원의 재량적 판단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관청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관청에만 가면 기가 죽고 공무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의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최근엔 민간자율 형식으로 법적 근거도 없는 사실상의 규제들이 도입되고 있다. 민간 자율 형식으로 영업규제나 가격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과 같은 사실상의 규제를 만들고 있다.

규제를 하려면 법으로 하든지 아니면 말아야 한다. 법적 근거도 없는 자율규제나 애매모호한 규제의 확산은 기업 활동의 리스크를 높여 투자를 위축시키고 권력남용과 부패의 가능성을 높인다. 오히려 되는 일은 확실히 되고,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안 되도록 된다면 역설적으로 기업 활동이 더 자유롭고 투명해질 수 있다.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나라 정부규제부터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우리 정부규제의 문제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의 문제다.

김종석(홍익대 교수·경제학)


기사원문보기

  목록  
번호
제목
날짜
745 [문화일보 - 오피니언 포럼] 사이버保安法 제정이 시급한 이유 13-04-02
744 [동아일보-손태규의 ‘직필직론’]‘양승태 개혁’을 위해 건배 13-03-28
743 [국민대통합: 어떻게 할 것인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13-03-25
742 [동아일보-손태규의 '직필직론'] 장군, 마이크를 잡으시오 13-03-19
741 [문화일보 - 오피니언 포럼] 不法농성장 철거는 政府의 책무다 13-03-13
740 [문화일보 - 오피니언 포럼] 北의 ‘정상국가化’가 근원적 해법 13-03-12
739 [동아일보-손태규의 ‘직필직론’]똑 똑… 국민에게 문 좀 열어주세요 13-03-07
738 [국민일보-경제시평] 성장과 분배의 상충 관계 -김종석 13-03-07
737 [동아일보-손태규의 '직필직론'] '공기업 평가'를 평가하라 13-02-22
736 [국민일보-경제시평] 정부규제, 품질이 문제다 13-02-22
735 [국민일보-경제시평] 하락하는 성장잠재력 (김종석 홍익대학교 교수) 12-11-15
734 [뉴데일리 - 김종석 칼럼] 경제민주화의 악령! 실패한 과거사 되풀이? 12-11-05
733 [국민일보 경제시평] 목적과 수단이 안맞는 공약 - (김종석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 12-10-24
732 [동아일보/시론] 전직 경제장관들의 나라경제 걱정 (김종석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 12-09-28
731 [문화일보 오피니언 포럼] 利敵단체 해산시킬 立法 시급하다 (조영기/고려대 인문대.. 12-07-10
730 [시론] 한국군 한미연합사령관 시대로 (박휘락 국민대 초빙교수 / 한반도선진화재단.. 12-06-27
729 [조선일보 발언대] 강정기지, 역사적 상식에서 바라보자 (박휘락 국민대 초빙교수 /.. 12-03-13
728 [매일경제/김진현 칼럼]대한민국 낙관론과 비관론 ― ‘가족이기주의’라는 악성 변종 .. 12-01-05
727 [바이트/인터뷰] “가치와 이념을 소중히 하는 가치정당 필요” 11-10-11
726 [주간조선/인터뷰] “대한민국 주류의 가치 지킬 수 없다면 한나라당은 문 닫아라” 11-09-01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