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규제는 세금과 같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세금 없는 정부를 상상할 수 없듯이 규제 없는 정부도 상상할 수 없다. 실제로 정부규제를 ‘감추어진 세금’이라고 한다. 어떤 규제든 국민 입장에서는 지키려면 돈과 시간, 노력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규제는 사실상 세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정부규제와 세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세금은 납세자들이 현금을 국가에 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 기준과 집행이 엄격한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과도한 경우에는 조세저항도 뒤따른다. 그러나 정부규제는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도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민이 그 규제로 인해 져야 하는 부담이 얼마인지, 정말 기대효과는 있는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통제나 점검 없이 만들어지고 그냥 집행된다.
더구나 주무부서가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알 것이라는 전제 아래 규제 집행부서에 사실상 규제의 입안부터 집행까지 권한이 대부분 위임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정부규제가 집행자 편의 위주로 절차와 기준이 정해지고, 국민이 져야 하는 부담이나 부작용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도입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정부규제가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가지게 된 배경이다.
과거에 규제완화 또는 규제개혁의 이름으로 추진된 많은 조치들이 사실은 기업들의 규제비용을 낮춰 주는 일종의 감세처분인 경우가 많았다. 불법행위에 대한 과징금을 낮춘다든지, 정기검사를 면제해 준다든지, 구비서류를 줄여 준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그 결과 규제개혁이 기업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국민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기업 민원 해소 차원의 행정서류 절차 개선과 고비용 저효율의 정부규제를 개선하는 차원의 규제개혁은 구분되어야 한다.
규제가 많다고 하니까 그 대책으로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휘 선택의 잘못으로부터 초래되는 착각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정부규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나라들, 특히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면 특별히 더 많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업인들이, 그리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규제가 심해서 기업하기 어렵다고 하는가. 그것은 우리나라에 규제가 많아서가 아니라, 정부규제의 품질이 저질이기 때문이다.
정부규제의 품질은 여러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정부규제에서 기업인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을 가장 피곤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부규제와 제도의 불투명성이다. 많은 정부규제 제도가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행정지도의 명목으로 법에도 없는 간섭과 지시가 많다. 모든 것이 공무원의 재량적 판단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관청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국민들은 관청에만 가면 기가 죽고 공무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의 가능성이 높아짐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최근엔 민간자율 형식으로 법적 근거도 없는 사실상의 규제들이 도입되고 있다. 민간 자율 형식으로 영업규제나 가격규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과 같은 사실상의 규제를 만들고 있다.
규제를 하려면 법으로 하든지 아니면 말아야 한다. 법적 근거도 없는 자율규제나 애매모호한 규제의 확산은 기업 활동의 리스크를 높여 투자를 위축시키고 권력남용과 부패의 가능성을 높인다. 오히려 되는 일은 확실히 되고, 안 되는 일은 절대로 안 되도록 된다면 역설적으로 기업 활동이 더 자유롭고 투명해질 수 있다. 진정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나라 정부규제부터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우리 정부규제의 문제는 양의 문제가 아니라 품질의 문제다.
김종석(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