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석] 하락하는 성장잠재력
2012.11.13 18:16
김종석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원회 정책위원
전 한국경제연구원장
지금 한국경제가 겪는 어려움은 세계경제 침체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경제의 저성장 기조는 이미 그 조짐이 1990년대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경제성장률이 높으면 호황이고, 낮으면 불황이다. 또는 실업이 늘어나면 불황이고 줄어들면 호황이라고 할 수 있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성장률, 또는 실업이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성장률, 즉 호황과 불황의 경계가 되는 성장률이 있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잠재성장률 또는 성장잠재력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을 3%대로 보고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초에는 잠재성장률이 8%대였다. 그래서 그때는 두 자릿수 성장률은 돼야 경기가 괜찮다고 여겼고, 6%만 성장해도 불경기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랬던 잠재성장률이 지금은 그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이젠 4%만 성장해도 호황이라고 할 판이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언젠가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이 0%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OECD는 한국의 성장잠재력이 2031년경에 1% 미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지금의 저출산 고령화 속도와 하락하는 저축률을 감안하면 이것도 낙관적인 전망이다.
잠재성장률이 0%가 된다는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꺼진다는 것이고 호황과 불황의 경계가 0%인 상황을 의미한다. 마이너스 성장과 플러스 성장을 반복하면서 1%의 성장에 감사해야 할 날이 올 수 있다. 이것이 지금 한국경제가 향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다. 올해 성장률이 작년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놓고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한국이 선방했다고 자만하는 순간 이미 새로운 위기가 진행 중이고, 한국 경제가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심장마비 같은 갑작스러운 질병만이 아니라 암과 같이 서서히 진행되는 질병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듯이 나라 경제도 외환위기 같은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만 위기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가 오는지도 모르게 서서히 경쟁력을 잃으면서 죽어갈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가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은 난치병이지만 불치병은 아니다. 이미 경제학 교과서에 성장잠재력을 올리는 처방과 해답이 다 나와 있다. 기업 환경을 개선해서 국내외 투자를 활성화하고, 고용 형태를 다양화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면 성장률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개방과 경쟁을 촉진해서 효율성을 높이면, 기업과 근로자들이 이익 나눠먹기보다는 가치 있는 생산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소득분배 효과가 커진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경제문제에 대한 정치논리의 지배, 그로 인한 도덕적 해이와 생산성 저하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경제원리에 다시 충실하면 된다. 경제원리는 절약과 효율을 기본원리로 하기 때문에 통합과 나눔을 원리로 하는 정치논리와는 상충관계일 수밖에 없다. 포퓰리즘이 경제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는 것은 과거 남미국가들의 경험과 지금 남유럽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면 자명하다.
더 먹기를 원한다면 더 생산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공짜가 만연하면 누구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일 덜 하고도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환상적인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공휴일도 더 늘려야 한다고 한다. 증세와 기업규제 강화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경제이론은 없다.
경제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재분배는 남의 돈 뺏기가 되기 때문에 계층 갈등과 저항만 초래할 뿐이다. 사회통합과 소득재분배를 제대로 하려면 경제성장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하락이라는 장기 추세를 극복하지 못하면 온갖 공약과 비전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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