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2171호]
2011.08.29
“대한민국 주류의 가치 지킬 수 없다면 한나라당은 문 닫아라”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나는 한나라당이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드러난 것처럼 보수정당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 가치와 원칙을 포기했다. 국가 전체의 이익이 훼손될 게 뻔한데도 정파적 이유나 자기 표 계산 때문에 소극적으로 사안에 임했다. 그건 기본적으로 보수가 아니다.”
박세일(63)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8월 25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사무실에서 주간조선과 만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오세훈 시장이 패배한 데 대해 한나라당을 향해 독설에 가까운 비판을 했다. 박 이사장은 “인기 영합의 승리이고 공동체 가치의 패배”라며 “보수의 패배? 그건 아닌 것 같고….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무산된 건 사이비 보수의 패배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투표일(8월 24일) 전날 한나라당 주요 당직자들의 언행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사이비 진보세력이 만들어 놓은 포퓰리즘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는 보수 정치가는 눈에 띄질 않고, 개인적 감정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여서 안타까웠다고 한다. 박 이사장은 그런 한나라당을 두고 “사이비 보수”라고 했다.
그는 “내가 보는 입장에서 이번 선거의 승리자는 사이비 진보세력이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보수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한나라당이 보수의 가치와 원칙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오 시장을 적극 지지하고 ‘공짜’ 복지 시리즈의 부당함을 시민들에게 알렸으면 주민투표 결과가 달려졌을 수도 있다는 게 박 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과 무상복지 문제는 민주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도 했다. 특히 무상복지가 득표를 위한 야당의 정략적 판단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크게 우려했다.
“지난 5년 사이 우리 사회는 두 가지 망국적 포퓰리즘에 가로막혀 있다. 하나는 수도 분할 포퓰리즘이고 다른 하나는 공짜 복지 포퓰리즘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선진화되고 민주주의를 완성해 가는 데 있어서 결정적 장애물이 될 것이다. 무상급식은 잘못된 방향의 시작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오 시장이 온몸으로 이를 막아선 건 개인의 정치적 계산을 떠나 잘한 일이다.” 박 이사장은 “오 시장이 홀로 전투를 치르던데,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최소한의 동지애도 없어 보였다”고 꼬집었다.
박 이사장은 오 시장이 시장직 사퇴카드를 꺼내든 것에 대해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잘못된 가치가 도입되는 것을 막지 못하면 그때부터 그야말로 식물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서울시의회가 오 시장의 발목을 잡아온 게 사실인데, 자신이 바라는 시정을 하지 못할 바에야 물러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 사이비 보수라고 했는데, 진정한 보수는 어떤 세력인가. “역사적 흐름에서 보면 지금 한국의 야권, 즉 좌파는 국가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단기적 득표를 위해 무책임한 공짜 복지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보수는 이를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이 스스로 보수적 가치와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공당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 한나라당을 어떻게 진단하나. “한나라당이 지금 점차 박근혜 전 대표의 사당(私黨)으로 돼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박 전 대표나 홍준표 대표 모두 사적 이해관계를 떠나 철학과 원칙을 보여줘야 한다. 한나라당은 국가 경영이라는 차원에서 무상급식을 막아야 하는지, 아니면 수용해야 하는지를 논의조차 하지 않는다. 개인적 이해관계 속에서만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통일이라는 가치를 과연 한나라당에 맡겨도 될지 모르겠다.”
- 보수정당의 가장 큰 문제는. “보수로서의 미래지향적 원칙과 가치를 세우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보수정당은 기득권에 기대려고만 한다. 한나라당의 가장 큰 병은 기득권병이다. 시대적 현안을 해결해 나갈 의지와 능력이 보이질 않는다.”
- 개선의 여지는 없나. “수도 이전 포퓰리즘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현 정부에서 이를 바로잡지 못했다. 공짜 복지 포퓰리즘도 마찬가지다. 결국 재정 등의 측면에서 부담이 가중될 것이고 언젠가 다시 손을 볼 날이 올 거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이 막아내지 못했으니 어찌 보면 자초한 셈이다.”
박 이사장은 경제성장을 모색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리 사회가 복지 확대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도 했다. 당장은 복지정책이 달콤한 유혹이 되겠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정부의 재정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오히려 지금은 경제성장을 통한 부의 재분배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도 복지를 어떻게 경제화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지금 세계의 이슈는 복지가 아니라 경기활성화에 있다. 경제가 어려우면 비정규직이 생겨나고 양극화 문제가 커지게 된다. 여기서 경제성장은 재벌을 위한 성장이 아니다. 어려운 이웃들이 잘살 수 있도록 하려면 일자리를 만들고 성장을 유지해야 한다.”
그는 또 무상복지에 앞서 민족복지와 국민복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양극화 해소에 방점을 찍은 민족복지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민복지가 이른바 무상복지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노약자나 고령자를 위한 복지를 어떻게 만들고 재정을 어디서 충당할지에 대한 고민에는 좌우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부의 재분배에 앞서 우리 내부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보다 고차원적인 복지를 고민해야 한다. 보수정당이 이런 사회 주류적 가치를 논의해야 하는데, 오히려 무상복지 같은 계층적 복지에 매몰돼 진보진영의 이중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행정수도 이전을 앞두고 있는 충남 공주시 인근 주민들이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부처의 이전에 중심을 둔 원안보다 기업도시에 방점을 찍은 수정안이 더 낫다는 얘기가 지역에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분할처럼 잘못된 정책은 뭐가 잘못됐는지 국민에게 정확히 알렸어야 했다. 한번 결정된 정책은 바로잡기 힘들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두고두고 정부에 부담을 줄 게 자명하다. 국민이 모든 걸 다 알기 어렵다. ‘그건 아닙니다. 이게 옳습니다’식으로 적극적이어야 한다. 이걸 안 하니까 좌파 정치인들이 포퓰리즘 놀음을 하는 거다.”
박 이사장은 사회 양극화의 원인을 경제성장 둔화와 교육개혁의 실패에서 찾았다.
“우선 성장이 둔화되면 일자리가 줄고 비정규직이 생겨난다. 부의 쏠림 현상도 강해져 양극화의 원인이 된다. 과학기술의 변화 속도를 교육이 뒷받침하지 못하고 오히려 뒤처지게 되면 소수에게 이익이 집중된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까지 기술변화보다 교육개혁이 빨라 소득 분배가 개선됐지만 그 이후에는 교육이 기술변화를 쫓아가지 못해 부의 불균형이 심화됐다.”
박 이사장은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교육과정에 포함된 이념적 문제들을 걸러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학은 기득권에 안주하고 교육과정에 이념적 문제가 너무 많다. 이런 환경에서 좋은 인재를 배출하기 어렵다. 기술발전의 속도에 맞춰 인재를 양성하고 거기서 새로운 부를 창출해야 한다. 이제 세계는 인재가 있는 곳으로 자본이 몰리는 시대를 맞았다.”
| 인터뷰/김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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