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8일(금)
<조선일보>
A30면 / 박세일 칼럼
통독 비용 많이 든 것은 정치인들이 동독 주민 표 얻으려
선심정책 편 때문 통일비용 충분히 관리 가능
그 때문에 통일 머뭇거리면 민족 천추의 한 될 것
박세일 /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통일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통일은 민족의 숙원이니 모두가 기뻐할 일이다. 그런데 독일 통일에 든 천문학적 비용을 보며 과연 우리가 그 엄청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국민도 많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외교 면에선 성공한 통일이지만 경제정책 면에선 실패한 통일이다. 천문학적 통일비용이 든 주된 이유는 통일 과정을 잘못 관리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독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은 서독의 30% 수준인데 임금은 70~100%를 주었다. 동독 화폐의 시장 구매력은 서독의 1/4 수준인데 교환비율을 1 대 1로 정했다. 그래서 임금 인상으로 생산비는 오르고 구매력이 높아진 소비자는 동독 생산물을 외면했다. 동독 공장들이 줄줄이 파산하여 통일 2년 내 주민의 3분의 1이 실직했다.
정부는 이들 실직자들에게 서독 수준의 실업수당 등을 주기로 결정했다. 동독 주민의 40%가 사회보장비로 생활을 했고, 그 결과 통일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사실 통일비용의 50%가 사회보장비용이었고, 이를 포함한 80%가 소비적 지출이었다. 동독의 경제 발전을 위한 인프라 건설 등 '투자적 지출'은 총통일비용의 20% 수준도 안 됐다.
경제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독일 정부는 이런 잘못된 결정들을 했을까? 정치인들의 '통일 포퓰리즘' 때문이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동독 주민의 표를 얻기 위해 잘못된 인기 영합정책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 과정의 관리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독일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의 성공적 통일을 위해선 북한의 구(舊)체제가 실패한 뒤 일정 기간의 혼란 후 가능한 한 빨리 북의 '개혁·개방 세력'과 남의 '통일 준비 세력'이 공치(共治)하는 '특별행정기구'를 북에 세워야 한다. 그리고 북 전체를 '경제·행정특구'로 지정하여 당분간 남쪽과는 별도 관리하며 다음의 3단계를 거쳐야 한다.
제1단계는 '체제 전환과 자생적 발전 기반 구축' 단계이다, 지금까지의 계획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기 위한 토지와 공장의 사유화(私有化), 기업과 가격의 자유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 이 시기에는 남북 간의 노동 및 자본 이동은 허가를 통해 관리된다. 토지·공장의 사유화는 '북한 거주'를 조건으로 해야 한다. 성급한 대규모 노동 이동이나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 기간 중 핵심 정책은 북한의 저임금 구조를 유지, 북한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자생적 수출 주도형 발전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제2단계는 '대규모 대북 투자와 남북 경제 통합' 단계이다. 대북 투자는 산업 인프라, 에너지, 교육 투자 등에 집중되어야 한다. 체제 전환과 대규모 대북 투자에 성공하면 그것만으로도 북한 경제의 성장률이 연평균 25% 내지 40%가 될 것이다. 북녘 동포들이 삶의 희망을 되찾게 된다. 다음은 본격적 남북 경제 통합이다. 상품 서비스시장 통합부터 시작해 자본시장, 노동시장 통합의 순서를 밟아야 한다. 시장 통합에 상응하는 금융·재정·교육·노동 등의 법률과 제도 통합도 순차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제3단계는 '정치 통합' 단계이다. 자유선거를 통한 통일헌법의 채택 등 단일 정부 수립을 위한 제도 개혁의 단계이다. 정치 통합을 경제 통합 뒤에 하는 이유는 통일 과정에 등장할지 모르는 '통일 포퓰리즘'을 막기 위해서이다.
통일 과정이 시작되면 최소한 5년 내지 10년이 걸릴 위의 3단계를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국운 융성의 지평이 활짝 열린다.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 고학력의 저임금 인력, 산업구조의 보완성, 잠재적 내수시장 등이 남한의 자본과 기술, 해외 경험과 결합하면, 그리고 그동안 남북 분단으로 지급한 막대한 국방비와 갈등 비용 등을 절약하게 된다면 한반도 경제는 아시아에서 욱일승천하는 용(龍)이 될 것이다. 중국의 발전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웃 4강이 있는데 과연 통일 과정을 우리 뜻대로 통제 관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러나 이는 강한 의지와 각오가 우리에게 있느냐의 문제이고, 북의 변화 과정에 얼마나 일찍 깊게 관여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자신이 문제이다. 통일을 비용으로 보고 머뭇거리면 한반도 역사는 이웃 4강들이 대신 써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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