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3월 9일 조선일보 A38면(오피니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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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칼럼]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할까
박세일 :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민주화됐으나 자유화 실패한 나라
세계의 50% 포퓰리즘과 국민 '떼 법'이 자유화 막는 주범
지금 우리는 어떤가
대한민국에서 과연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의 성공으로 중진국 선두주자가 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1980년대 민주화에도 성공하였다. 그렇다면 이미 민주화에 성공하였는데 왜 민주주의의 성공 여부를 문제 삼는가?
일반적으로 정치적 후진국에서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두 단계를 지나야 한다. 하나가 '민주화'의 단계이고 다음이 '자유화'의 단계이다. 민주화란 국민이 투표를 통하여 권력자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고, 자유화란 그렇게 선택된 권력자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과 재산을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법의 지배와 국민 생활에 대한 정부의 불필요한 간섭을 최소화하는 제한(制限) 정부가 돼야 자유화이다. 그런데 민주화 즉 선거민주주의에 성공하였다고 하여 저절로 자유화 즉 자유민주주의까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현재 소위 세계 민주주의 국가 119개국 중에서 민주화에는 성공하였지만 자유화에 실패한 소위 비(非)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50%에 가깝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유화에 실패하는 민주국가가 늘고 있다.
민주화를 넘어 자유화까지 성공하려면 두 가지 장애를 넘어야 한다. 하나가 포퓰리즘이고 다른 하나가 급진적 다원주의다. 포퓰리즘은 '정치적 선동가'가 등장하여 다수 국민의 정서에 영합하거나 그 감성을 자극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공익을 파괴하는 정치 행태이다. 국정이 이렇게 인기 영합적으로 운영되면 법과 원칙은 무시되고 국가 이익은 훼손된다. 수도(首都) 분할, 혁신 도시 건설, '부자 감세(減稅)'란 용어, 무상(無償) 급식 주장 등이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이러한 포퓰리즘이 무성하면 자유화 즉 자유민주주의는 서서히 실패하게 된다.
자유화를 막는 또 하나의 장애인 급진주의는 '사회적 과격파'가 등장하여 목소리가 큰 소수를 조직화하여 침묵하는 다수를 위협하며 국가의 기본 질서와 가치를 파괴하는 사회 행태이다. 급진주의가 성(盛)하면 막가파식 '떼 법'이 공권력을 능멸하고 법치주의를 파괴한다. 법원에서 판사에게 삿대질하고, 길거리에서 경찰을 구타하고, 학교에서 교사들에게 막말하는 일이 빈번해진다. 국민을 폭민화(暴民化)하는 이러한 급진주의가 성하여도 자유화는 실패한다.
민주화 이후 이렇게 포퓰리즘과 급진주의가 나타나면 더 이상 '이성·합리·타협의 정치'는 불가능해지고 오로지 '감성·분열·대결의 정치'만 난무하게 된다. '국가 경영형 정치'는 문을 닫고 '권력 투쟁형 정치'만 판을 친다. 정치가 국민과 국익을 위한다는 자기 목적을 잃고 소수 선동 정치가들의 사유물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국정은 무한(無限) 표류한다.
그다음에는 포퓰리즘과 급진주의가 서로 손을 잡고 국가 재정, 즉 국민 세금에 대한 약탈을 시작한다. 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을 위한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고, 목소리 큰 집단이나 지역을 위한 '국민 세금 퍼주기' 경쟁이 일어난다. 그러면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가 급증하고, 그 결과 국가 신용이 추락하고 급기야는 국가 부도사태를 초래한다. 자유민주주의뿐 아니라 시장자본주의의 실패까지 몰고 온다. 한마디로 국가 실패이다. 실제 19세기 말 경제 성공국이던 아르헨티나가 20세기 전반기 포퓰리즘과 급진주의의 등장으로 인해 대(大)추락을 경험했다.
민주주의는 시간만 가면 저절로 성공하는 제도가 아니다. 돌그릇이 아니라 유리병 같아서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깨지기 쉬운 제도이다. 아니 잘못 다루면 크게 위험한 제도이다. 시장경제에 성공하려면 폭주(暴走)하는 '시장 만능주의'를 규제해야 하듯이 민주주의에 성공하려면 폭주하는 '과잉 민주주의'를 자율적으로 억제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우리 정치가 인기영합적 정책과 포퓰리즘 경쟁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스럽고, 우리 국민은 집단 이익과 지역 이익의 유혹을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그래서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정착과 시장자본주의의 발전을 향해 뛰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로 달리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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