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2월20일(토) 조선일보 A15면에 실린 서평입니다.
질주하는 세계화 시대...
한국의 새 발전모델은 '서울 컨센서스(Seoul Consensus)'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창조적 세계화론
박세일 지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782쪽 | 3만8000원
21세기 선진화·통일 위한 10代 발전전략 구체화
분배·환경 배려 더 필요… 사회 통합 방안 보완해야
평자는 2년 전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삶과 연구를 다룬 글에서 그를 '경세가'(經世家)라고 부른 바 있다. 경세가란 학문과 정책을 동시에 담당하는 사람, 예를 들면 조선시대 사대부와 같은 존재를 말한다. 뜻을 이룰 수 있는 상황이면 세상에 나아가 경륜을 펼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물러나 학문 연구에 전력을 다하는 이들이 경세가다. 경세가로서 박세일 교수의 그동안 연구를 결산하는 책이 나왔다. 《창조적 세계화론》이다. 이 책은 김영삼 정부의 정책을 총괄했던 정책기획수석이 아니라 사회과학 연구자로서 박 교수의 존재를 널리 알린 책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006)과 잇닿아 있다.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서 박 교수는 우리 사회가 이제 건국·산업화·민주화를 넘어서 선진화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해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는 이른바 '공동체 자유주의'에 기반한 교육·문화, 시장능력, 국가능력, 시민사회, 국제관계의 선진화를 통해 부민덕국(富民德國)의 선진일류국가 기획을 제시한 바 있다.
평자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주목했던 이유는 이 책에서 제시된 '선진화론'이 우리 사회 보수세력에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공했다는 점에 있었다. '민주화'를 국가비전으로 제시한 민주화세력에 맞서 보수세력은 '선진화'를 내걸어 2007년 대선 이후 큰 정치적 성공을 거둬왔다. 이 점에서 박 교수는 수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보수세력의 '숨은 신(神)'과도 같은 존재였다.
《창조적 세계화론》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의 후속편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는 800쪽에 가까운 책을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박세일 교수의 문제의식은 명료하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 목표가 21세기 한반도의 선진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성취하는 데 있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를 위해 박 교수는 두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세계화라는 변화에 대한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분석과 이를 전제로 한 국가전략의 수립이 하나고, 과거 산업화 시대와는 전혀 다른, 21세기에 걸맞은 선진화 전략 및 모델을 찾아내는 일이 다른 하나다.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결국 중진국에 머물거나 후진국으로 추락해 선진국 진입에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박 교수는 경고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책은 세 가지 내용을 펼쳐보인다. 한반도의 통일전략과 동아시아 구상, 세계화가 가져올 변화와 그것이 제기하는 정책과제, 그리고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발전모델 및 전략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평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선진화 발전모델로 제시된 이른바 '서울 컨센서스(Seoul Consensus)'다.
지금 세계를 좌우하고 있는 '워싱턴 컨센서스'나 새롭게 부상하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떠올리게 하는 '서울 컨센서스'는 이 책의 결론이자 백미다.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변화를 감안하고 한국의 지난 산업화 성공 역사도 참조하여 우리 사회의 역사·문화·전통·의식에 맞는 우리 나름의 새로운 '창조적 세계화' 전략을 지칭한다. 그리고 '서울 컨센서스'의 10대 발전전략을 박 교수는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박세일 교수는 선진화의 목표를 '창조적 세계화'로 명명하고, 이를 10대 발전전략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선진화 담론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동시에 그 설득력을 높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평자 역시 3년 전 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제시한 바 있지만, 박 교수처럼 이렇게 풍부하면서도 치밀한 내용을 펼쳐보인 것은 아니었다. 철학으로서의 '공동체 자유주의', 국가비전으로서의 '창조적 세계화', 그리고 발전전략으로서의 '서울 컨센서스 10대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박 교수는 선진화론을 완성하고 있다.
《창조적 세계화론》은 한마디로 21세기 한국 사회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의 뛰어난 교과서이자 정책대안 탐구의 탁월한 지침서다. 질주하는 세계화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해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일자리 창출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한국 사회 분석과 대안 모색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 또 생산적으로 종합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론적·담론적 측면에서 보면 창조적 세계화론은 중도보수(박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파진보)의 대안론이다. 박 교수 역시 양극화 해소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 보호에 주목하고 있지만, 무게 중심은 어디까지나 성장과 개방, 그리고 국가에 맞춰져 있다. 서울 컨센서스 10대 전략에서 분배·환경·거버넌스가 다뤄지고 있지만, 평자가 보기에 이 이슈들에 대한 더욱 전향적인 배려가 요구된다.
정치적·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현실과 이상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전과 전략을 담는 그릇으로서 최근 우리 사회의 정책 환경은 창조적 세계화를 추진하는 데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사회통합의 제고를 포함한 정책 환경의 개선에 대한 논의가 좀 더 보완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경세가란 '아카폴리(Aca-Poli)'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아카폴리는 '아카데미즘'과 '폴리시 스터디스'(policy studies·정책 연구)를 적극적으로 결합한다는 의미다. 격변하는 세계 사회와 한국 현실을 볼 때 현재 우리 사회과학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카폴리적 문제의식을 진전시키고 거기에서 나온 대안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박세일 교수는 최초의, 그리고 가장 뛰어난 아카폴리의 사회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는 물론 정책결정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하고 이끌어갈 젊은 세대들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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