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2월 26일(금) 대전일보 A5면에 실린 인터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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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특별 대담
“공동체 가치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 발전해야 국가 선진화”
“외교와 국제관계는 선진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데 반해 정치는 우리 사회에서 선진화와 가장 거리가 먼 분야입니다.”
‘선진화 전도사’로 알려진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조건으로 정치 분야의 선진화를 꼽았다.
서울대 교수, 청와대 정책기획수석ㆍ사회복지수석,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등 고위직을 두루 지낸 그는 ‘합리적 보수의 상징’, ‘보수 세력의 핵심 브레인’ 등으로 불리며 보수 진영의 유력한 차기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도 거론되는 인물.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5년 3월에는 ‘신행정수도 후속대착을 위한 연기ㆍ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행정도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이에 항의하며 의원직을 던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2주년을 맞는 25일 대전 유성의 한 호텔에서 만난 박 이사장은 현 정부의 선진화 전략에 대해 ‘국제관계나 경제부분은 성공적이지만, 교육이나 사회는 산업화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듯이 빗어 넘긴 머리와 흰색 셔츠에 빨간색 넥타이를 매고 짙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박세일 이사장은 국가선진화에 대한 전도사로서의 열변을 토했다. 정치ㆍ경제ㆍ사회 이론 등을 설명할 때는 풍부한 식견은 물론 앞으로 추구해야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할 땐 학자적 기풍과 친근함이 묻어났다.
▶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대한민국 국가전략’에 이어 최근 ‘창조적 세계화론’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모두 선진화를 주제로 하고 있는데, 선진화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2005년 국회에서 나온 뒤 우리 사회 전반을 분석하면서 ‘과연 우리가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하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당시 사회는 서울과 지방, 강남과 강북,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등으로 분열돼 있었고, 미래를 내다보기 보다는 과거와의 투쟁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미래를 대비해야 통합이 되지, 과거로 가면 분열됩니다. 그래서 쓴 책이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이고, 이후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구성한 것이 한반도선진화재단입니다. 선진화 연구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 박 이사장님이 생각하는 선진국이란 어떤 나라입니까?
“경제 선진화는 2007년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 달러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산층이 두터운 항아리형 경제구조가 돼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와 자유화의 조화가 이뤄진 자유민주주의입니다. 우리는 민주화는 이뤘지만, 자유화는 아직 성숙되지 않았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국민들 사이에 신뢰가 있고,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깊어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어울리면서 성숙한 나라를 만드는 창조적 선진국이 되는 게 선진화입니다.”
▶ 오늘(2월25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선진화 차원에서 어떠한 진전이 있었고, 미흡했는지 평가해 주십시오.
“이명박 정부는 산업화와 선진화의 중간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일부에선 산업화적 사고와 관행이 남아있고, 또 다른 한편에선 선진적인 가치와 정책을 추구합니다. 외교나 국제관계, 경제 분야는 성공적입니다. 그러나 교육이나 사회는 산업화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선진화와 거리가 가장 먼 분야는 정치입니다. 정치는 한 참 뒤쳐져 있습니다.”
▶ 이명박 정부가 남은 3년간 무엇에 집중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선진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세 가지로 교육과 지역발전, 통일 문제를 꼽고 싶습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인적·물적 자원의 창조성을 높이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발전 정책이 필요합니다. 언급한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통일에 대비하는 자세입니다. 북한의 체제위기가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통일로 연결시키냐 못 시키냐는 우리의 준비에 달려있습니다. 통일에 대해 적극적인 노력과 준비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분단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 통일과 관련, 국제회의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용을 소개해 주십시오.
“오는 4월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으로 ‘통일과 통일 이후’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대한민국이 통일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북한의 체제위기가 닥칠 경우 남북한을 제외하고 강대국들끼리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심포지엄을 통해 우리의 통일 의지를 세계에 알리는 한편 한반도의 통일이 주변 강대국들에게 이롭다는 점을 설득할 계획입니다.“
▶ 통일에 대비한 우리 국민의 자세와 정부의 전략에 대한 이사장의 견해는 무엇인가요?
“통일이 되면 경제 부담과 사회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인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통일은 비용보다 이익이 크고, 민족적 가치의 문제입니다. 통일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정부도 통일에 대비해 주변 강대국을 설득하고 북한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다만,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교정하고 북한에 대한 원칙을 세우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 워싱턴 컨센서스, 베이징 컨센서스에 이어 서울 컨센서스를 주창하고 있는데, 서울 컨센서스를 주창하게 된 경위와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지난 20년간 국가 발전의 표준 교과서였던 워싱턴 컨센서스가 2008년 금융위기로 신뢰를 잃었습니다. 이어 중국이 자국의 경제발전과정을 중심으로 베이징 컨센서스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1당 지배국가에서의 국가 발전 전략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 컨센서스입니다. 서울 컨센서스는 우리의 경제 성장 경험과 선진화를 위한 노력, 계획, 희망 등을 합쳐 만든 것 입니다. 이것은 국가 발전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은 물론 개발도상국가들의 희망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 선진화와 창조적 세계화의 철학적 기초로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인류는 지난 250년간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그 발전의 원동력은 자유주의입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성장한 나라도 있고, 성장하지 못한 나라도 있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소중히 할 때 자유주의가 빠르게 발전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면 자유주의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인류의 경험으로 볼 때,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선 자유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공동체에 대한 적절한 가치 배분이 필요합니다. 즉, 공동체 자유주의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입니다.”
▶ 세종시 문제로 인해 정치권의 갈등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세종시에 대해 정확한 인식이 필요한 것 같은데...
“모든 지역이 골고루 잘 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지방을 잘 살게 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 방법이 문제입니다. 지방 발전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경영의 포기와 돈·권력의 분산으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철저한 지방분권이 지방발전의 방향입니다. 세계에서 국내총생산이 3만 달러가 넘는 20개국 중 11개의 국가는 인구 1500만명 미만의 강소국이고, 나머지 9개의 나라 중 6개 국가가 연방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돈과 권력이 지방으로 이전할 때 발전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자본을 끌어 들이는 게 아니라 사람을 모으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기업을 유치해 발전을 꾀했지만, 사람이 모이면 자본은 저절로 모입니다. 지방에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돈과 권력을 지방에 줘야 합니다.”
▶ 세종시 문제에 대한 박 이사장님의 견해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어 그 내용에 대한 질문은 생략하겠습니다. 충청도민들에게 특별히 세종시 문제와 관련 하실 말씀이 있다면...
“과거식 지방발전의 대표적인 사례가 세종시와 혁신도시입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됩니다. 세종시는 국가 운영체계를 분산시켜 비효율은 물론 공무원과 국민들도 힘들게 합니다. 지방을 발전시킬 방법이 많은데 왜 그것을 안 하는지….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무리할 정도로 지역을 이롭게 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지역 발전의 호기가 될 수 있음에도 수정안을 수용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권력 투쟁을 위한 포퓰리즘적 정치분열입니다. 하루 빨리 합리적인 대안을 갖고 의견을 모아 상처받은 분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역주민들에게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고 진솔하게 사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가능하면 분열보다 국민과 함께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 6·2 지방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교육의원 등 8개의 동시가 치러지면서 후보자가 난립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해 어떤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민주화 이후 누구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이상한 풍조가 생겼습니다. 지도자는 공익을 추구하고 사익을 멀리하는 선공후사의 정신은 물론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경륜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풍조가 사라져야 합니다. 이 같은 풍조는 정당 구조도 한 몫 했습니다. 정당이 비전과 경륜, 도덕성 등 지도자의 자질은 소홀히 하고 당선가능성을 중심으로 공천을 했기 때문입니다. 정당의 문제와 정치 리더십의 문제가 고쳐져야 양질의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이 나올 수 있습니다.”
▶ 올해는 저희 대전일보가 창간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전일보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선진화와 통일을 향해 공론을 세워나가는데 앞장서는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론과 공론을 구별해주시길 요청합니다.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위해선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고 그 내용을 공론화한 뒤 사회에 알려야 합니다.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적·시대적 과제를 논의한 뒤 언론과 협력해 공론화해 사회를 이끌어야 합니다. 공론을 세울 때 사회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중론만을 쫓지 말고, 여론에 목매지 말며, 지역의 전문가들과 함께 공론을 세워나가는데 앞장서 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대담=구재숙 편집부국장, 정리= 한종구 기자 sunfl19@daejonilbo.com>
* 약력·저서
◇학 력 △서울대 법학과(법학사) △일본 동경대 대학원 경제학부 수학 △미국 Cornell 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미 Columbia 법과대 법경제 연구소 초빙연구원
◇경 력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사회복지수석비서관 △KDI 정책대학원 초빙 석좌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국회 범국민정치개혁위 위원장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정책위 의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현)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현)
◇수 상 △한국 경제학회 청람상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
◇주요저서 △법경제학 △대통령의 성공조건: 권한 역할 책임(공저) △대한민국 선진화전략 △21세기 대한민국 선진화 4대전략(공저) △공동체 자유주의(공저) △대한민국 국가전략 △창조적 세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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