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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강연] 선진화 시대의 민주주의운동 : 과제와 방향
 
2010-02-24 17:02:50

 

선진화 시대의 민주주의운동 : 과제와 방향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 재단 이사장,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최 : 228 민주운동기념사업회
2010년 2월 24일 / 대구 그랜드호텔


1. 들어가는 말

민주주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끝임 없이 변화하고 진화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흔들리고 부패하고 실패할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생각보다 민주주의는 허약한 생명체이다. 일단 민주주의가 도입되어 시간만 가면 저절로 성공적으로 정착할 것이라는 생각은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인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조심하여 잘 가꾸고 지극한 정성을 드려야 성공하지 막 다루면 반드시 실패하는 제도이다. 그래서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서구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대단히 다루기 어려운 불안정하고 위험한 제도로 보았다. 잘못하면 우민화(愚民化)하거나 폭민화(暴民化)하기 쉬운 제도로 보았다. 사실 BC 1000년 전에 그리스 시대 한동안 민주주의를 채택하였으나 그 이후 인류는 오랜 기간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선택하지 아니해 왔다. 국가의 합리적 운용이 어려운 제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지난 50년간 약 3단계를 거쳐 변화 발전하여 오고 있다. 첫째 단계는 1960-70년대 소위 [산업화시대의 민주주의]이다 둘째 단계는 1980-90년대 소위 [민주화시대의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셋째 단계는 2000년 이후 소위 [선진화시대의 민주주의]이다. 각 각의 단계에 따라 지양하는 민주주의 성격이 다르고 또한 과제가 다르다.


2.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3단계

2-1. 산업화시대의 민주주의

이 산업화시대의 민주주의운동의 시발은 1960년 2.28 대구학생의거에서, 환언하면 2.28 대구민주화운동에서 출발하였다. 그 이후 3.8일 대전 3.10일 수원 충주, 3.1일 부산과 청주, 3.15일 마산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그 이후 민주주의운동은 5.16 쿠테타로 등장한 산업화세력이 점차 反민주 독재의 길을 가게 되면서, 그에 대한 반대와 저항의 형태로 이어진다. 이 반대와 저항에는 야당과 학생 그리고 자유언론 등이 이에 앞장섰다.

이 산업화시대의 민주주의운동의 특징은 민주화세력이 지향하는 목표가 소위 [부르조아 민주주의]였다는 점이다. 운동가들의 다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상으로 하면서 현실비판을 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에도 反체제의 운동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운동- 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것이 당시 민주주의 운동의 주류는 아니었다.   

2-2. 민주화시대의 민주주의

민주화시대의 민주주의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시발점이 되었다. 그 이후 군사정부에 대한 살신(殺身)의 저항과 거부가 시작된다. 그런데 이 민주화 시대의 민주운동이 이상형으로 지향하였던 민주주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아니었다. 당시 민주주의운동의 이상은 소위 [민중(民衆)민주주의]라고 불리 우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하였다.  광주운동이후 군사정부의 탄압이 과거 보다 더 격심하여 졌고, 그에 대한 저항의식도 더욱 격력하고 강고하여져서, 당시 지향하던 민주화의 목표 자체도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과격하여졌다.

물론 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던 혹은 지지를 보냈던 대다수의 시민들이 목표로 하였던 것은 프로레타리아 민주주의는 아니고 오히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의 핵심주체들의 목표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였다. 그 중 일부는 [친북 주사파]였고 다른 일부는 프로레타리아의 독재를 믿는 순수 [국가사회주의자]들이였다.

2-3. 선진화시대의 민주주의

2000년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의 국가목표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나  이제는 [선진화와 통일]로 바뀌게 된다. 새로운 시대에 들어 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운동세력 -특히 민주화시대의 민주주의 운동세력- 은 [생각의 큰 혼란]을 겪게 되었다. 우선 프로레타리아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던 민주화운동의 핵심세력에게는 냉전이후 舊 사회주의권의  몰락, 그리고 북한의 체제실패의 증후를 보면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사실상 더 이상 우리의 이상적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오래 지켜 왔던 생각을 바꾸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의 큰 혼란과 혼동이 있다.   

반면에 막연히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목표로 하였던 일반 시민들에게도 생각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왜 대한민국의 정치가 민주화에 성공한 이후에도 이렇게 혼란스럽고, 국민의 분열과 갈등은 심화되고 있는가? 그리고 정치권의 대립은 오히려 격화되고 국정은 표류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때문이다.

독재자만 없으면 민주주의는 저절로 꽃을 피우고 국민들의 정치생활은 자유롭고 정의로울 줄 알았는데 왜 오히려 더 분열 갈등 대립은 격화되고 있는가? 이러한 상황을 보며 일반시민들도 대단히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과연 브르조아적 민주주의 즉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우리나라의 문화와 의식 등에 과연 맞는 바람직한 제도이고 모델인가에 대해 회의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그러나 다수는 아직 왜 민주화에 성공한 이후에도 국민통합과 정치안정은 안되는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해 그저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막연히 서구식 민주주의가 우리의 모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3. 민주주의 발전의 두 단계

민주주의는 어느 나라든 두 단계를 통하여 발전한다. 하나는 [민주화의 단계]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화의 단계]이다. 민주화란 국민이 투표를 통하여 지도자를 결정하는 것,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자유화란 무엇인가?  그렇게 뽑은 정부가 국민의 개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권리를 하늘처럼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민주화란 정부를 어떻게 만드는가라는 [정부구성의 원리]이고 자유화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하여 정부를 어떻게 통제하여야 하는가 하는 [정부통제의 원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서구에서는 자유화(자유주의)가 먼저오고 그 다음에 민주화(민주주의)가 왔다. 영국의 경우 자유화는 13세기 마그나 카르타 시기부터 시작된다.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군주)의 자의(恣意)를 제한하고 통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된 역사 ,즉 자유주의의 역사가 오래 된다. 그리고 그 자유주의의 역사는 19세기 들어오면서 개개인의 자유와 권리보호를 위한 정부(군주)에 대한 제한내지 통제를 헌법을 통하여 확보하는 소위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로 발전한다. 그래서 헌법에 의한 개인자유의 보장이라는 입헌적 자유주의(constitutional liberalism)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요약하면 자유주의는 서구에서는 비교적 일찍 시작되어 오랜 기간의 자유화 투쟁을 통하여 입헌주의로 제도화되는 방향으로 점차 진화  발전 정착하여 왔다. 

반면에 서구에서도 민주화 즉 민주주의의 역사는 비교적 짧고 최근의 일이다. 19세기 말 까지만 하여도 서구에서 민주화(민주주의, 특히 선거민주주의)에 대하여는 소극적이었고 대단히 위험한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쉽게 폭민화 하거나 우민화 할 위험이 큰- 제도로 이해되어 왔다. 민주화가 서구에서 본격된 것은 사실은 20세기 들어 와서이다. 1820년대 미국의 유권자는 전체 국민의 5%에 불과하였다. 여성 노예 영세민 등은 투표권한이 없었다. 한마디로 당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1920에도 미국의 유권자는 전체국민의 50%에 불과하였다. 여성의 참정권은 1920년 대 후반부터 인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상을 요약하면 서구의 경우에는 역사적으로 [先 자유화 後 민주화]였다. [先 자유주의 後 민주주의]였다. 그래서 서구의 경우에는 이미 13세기부터 시작된 오랜 자유주의의 역사와 전통이 배경에 있었음으로, 20세기 들어와 민주주의(선거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이 양자의 결합인 [자유민주주의]가 비교적 쉽게 정착할 수 있었다. 민주화이전에 자유주의적 토양이 그 사회에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라카 등 非서구권국가들에서는 대부분 자유화의 역사나 전통이 약하거나 거의 없는 상황에서 제도로서 민주화가 먼저 도입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위 [先 민주화 後 자유화], 즉  [先 민주주의 後 자유주의]이었다.   따라서 민주화 내지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하여도 곧 자유민주주의로 안정적으로 발전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들 사회에는 자유주의의 역사가 없고 전통이 약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아직 자유주의적 토양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서는 민주화(선거민주주의)가 성공한  이후에 비로소 자유화의 길---자유주의를 향한 투쟁---을 걷게 되고, 그래서 그 자유화까지 성공하여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게 된다. 즉 성숙한 자유민주주의가 된다.

그런데 민주화에 성공해도 자유화가 결코 저절로 가능한 것도 용이한 것도 아니다.  민주화에 성공하여도 자유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되면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하고 非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시대가 열린다. 즉 국민이 뽑은 지도자이고 정부이지만, 국민의 자유화와 권리를 억압하고 생명과 재산의 보호를 소홀히 하는 정부가 등장하게 된다. 히틀러가 극단적이면서 대표적인 경우이다. 


4. 자유민주주의의 3가지 장애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일반적으로 3가지 어려움이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의 장애는 독재자(dictator)이다. 독재자가 장기집권을 노리어 국민이 투표를 통해 정부를 선택하고 구성하는 권한을, 정부선택권 내지 정부구성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투쟁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독재자가 없어졌다고 하여 그대로 자유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자유주의를 토착. 정착시키는 [자유화의 단계]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자유화 단계에는 두 가지 장애가 있다. 하나는 포퓰리즘(populism)이다. 즉 선동가(agitator) 의 등장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위 급진적 다원주의(radical pluralism)의 등장, 즉 과격파(radicals)의 등장이다. 자유화 과정에서 이 두 가지----포퓰리즘과 급진주의---까지를 극복하여야 우리는 자유화에 성공하고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에 성공할 수 있다.

좀 더 상론하면 자유화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두 가지 위험이 나타난다. 하나는 [감성적 다수]가 등장하여 소수의 권익과 국가전체의 가치와 이익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직적 소수]가 등장하여 다수의 권익과 국가전체의 가치와 이익을 위협하는 것이다. 전자가 [포퓰리즘]이고 후자가 [급진주의]이다.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정치적 선동가]가 등장하여 다수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거나 정서를 자극하면서 국익을 버리고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행위를 의미한다. 이러한 포풀리즘이 등장하면 국정운영이 감성적 다수에의 해 좌지우지 되어 법과 원칙을 무시하게 되고 그 결과 국민개개인의 특히 소수자의 헌법적 권리 등은 쉽게 무시된다. 한마디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상징하는 집단적 [마녀사냥]이 일어난다. 그러면 자유화 내지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하게 된다.

또한 급진주의는 조직적이고 목소리 큰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위협하는 정치행태이다. 급진주의가 성하면 소위 막가파식의 [떼 법]이 등장하여 공권력을 능멸하고 법치주의를 파괴하여 종국적으로는 자유화 내지 자유민주주의를 실패하게 만든다.

이러한 포퓰리즘과 급진주의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국민개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 내지 법치주의(rule of law)가 정착하고---특히 소수자의 권리보호가 중요---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와 개입이 최소화되는 소위 제한정부(limited government)가 되어야 비로소 자유화에 성공하고 자유민주주의가 정착할 수 있다.

그런데 포퓰리즘과 급진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를 정착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시장자본주의] 자체도 실패의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포풀리즘과 급진주의는 [감성과 정서의 정치]로 이끌지 [이성과 합리의 정치]로 이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운영에 실패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포퓰리즘과 급진주의가 등장하면 쉽게 이 이 둘이 결합하는 경향을 가지는데 그렇게 되면 이들이 결합하여 국가재정에 대한 약탈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적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에 의하여 특정 집단이나 특정 지역을 위한 국가재정의 방만한 지출이 일어나고 이는 불가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증가로 나타난다. 그리고 국가부채의 증가는 오늘날과 같은 초 세계화시대에는---통화위기를 통하여-- 종국적으로는 국가부도를 결과하게 된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 뿐 아니라 시장자본주의의 실패까지 몰고 오게 된다. 20세기 전반에 아르헨티나에서의 포퓰리즘과 급진주의의 등장은 단순히 자유민주주의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시장자본주의의 실패로 그래서 그 결과로 국가실패로, 즉 선진국 진입의 입구에서 후진국으로의 대추락으로 나타나게 됐다.      

따라서 비록 민주화에 성공하였다고 하여도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서 동시에 시장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선 자유화(자유주의의 정착)를 위한 각별한 제도적 정책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독재자가 없어졌다고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동가와 과격파도 순화되어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그리고 나아가 시장자본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생각보다 어려운 제도이고 깨지기 쉬운 유리병과 같은 제도이다. 그래서 사실 민주화에는 성공하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에선 실패하는 나라가 생각보다 많다. 1975년 경에 세계에서 민주주의국가는 약 30여개국 정도 였으나  2000년 현재 약 119개국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중 약 50%만 자유민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약 50%는 민주화에는 성공하였지만 자유화에는 실패하고 있는 非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5.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대한민국에는 더 이상 독재자는 없다. 앞으로도 상당기간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정치적 선동가와 사회적 과격파의 등장은 항상 가능하다. 민주화의 물결이 오히려 이들의 등장에는 좋은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하여 포퓰리즘과 급진주의의 등장을 막고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세우고, 이 땅에 명실 공히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사실 [선진화시대의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정치리더십의 개혁이고 둘째는 정치제도의 개혁이고 셋째는 국민의식의 개혁이다.

첫째,  지도자의 정신과 윤리의 개혁을 목표로 하는 [리더십 개혁]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서는 우리나라의 훌륭한 정치문화전통의 하나인 민본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 民本主義란 아무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修己하여 私慾을 억제하고 先公後私할 수 있는, 환언하면 진정으로 爲民과 愛民을 할 수 있는 인격과 능력을 가춘 후에나 安民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해방 후 서구적 문물을 받아드리면서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것을 잘못이었다. 서구적 민주주의의 제도만 받아드렸지 서구민주주의의 정신적 기반이 되는 계몽주의와 합리주의는 함께 들어 오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오래된 훌륭한 정치문화의 전통은 무시되었다. 그래서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있는데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뒷받침할 정신---민주주의를 성공시킬 정신과 윤리---이 없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성공하려면 아무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도자의 정신, 윤리, 도덕을 가춘 인재들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민본주의가 전제되는 민주주의여야---[민본적 민주주의]여야-- 우리나라에서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지도자학(제왕학, 군자학 혹은 선비학 등)과 [지도자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야  선동적 정치가나 과격파 정치가들의 등장을 막을 수 있고 [민본적 민주적 리더십]이 나올 수 있다.

둘째, [권력투쟁형 정치]에서 [국가경영형 정치]로 바꾸는 정치제도개혁이 있어야 한다. 

국가경영을 위한 비전과 정책경쟁 없이 오로지 권력투쟁만을 위한 정치가 지배적이 되면 자연 포풀리즘과 급진주의의 등장이 용이하게 된다. 우리나라 정치가 권력투쟁형이 되는 데는 정당구조의 문제에 그 주요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정당은 절름발이 정당이다. (1) 국민을 대표하고 비전과 정책을 개발하는 [대표정책기능]은 없고  (2) 선거에 참여하고 승리 후에 권력을 나누는 [선거권력기능]만 있는 정당이다. 이렇게 선거권력기능이 중심이니 자연 지역정당화가 되기 쉽고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높다. 그리고 공천권에 영향력을 미치는 지도자가 중요하게 된다. 그러면서 정치는 私物化 되고 정당은 私黨化되는 경향을 가진다. 그래서 정치에서 국가비전과 국가경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거공학이, 환언하면 득표기술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그러니 정당들이 모든 중요 국가과제( 통일문제, 세종시 문제 등등)를 국가경영의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오로지 득표전략을 위한 수단으로 만 취급하려 든다. 그러니 국가경영도 국민통합도 없고 오로지 득표를 위한 선심성 포퓰리즘적 공약의 남발, 끊임없는 국민 분열과  편 가르기 만이 진행된다.    

정당을 (1) 국가비전과 정책중심으로 재편하여야 한다. (2) 진성당원을 가지는 환언하면 국민적 기반을 가지는 정당으로 바꾸어야 한다. (3) 그리고 공천개혁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나라 정당을 현재의 [사당구조]에서 [공당구조]로 바꾸는 시작이 될 것이고, 정당이 공당이 될 때 국가경영형 정치가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요컨대 정당제도 공천제도 선거제도 그리고 헌법의 일부까지를 바꾸는 대대적 제도개혁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국가비전과 정책을 중시하는 국가경영형정치가 나와야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을 앞당기게 된다.

셋째, 국민의 정치의식을 [민주적 公民]으로 바꾸는 획기적 개혁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前근대적인 연고주의와 지역주의, 그리고 단기적 집단이익내지 지역이익에 포로가 되어 있는 한 포퓰리즘과 과격주의의 등장을 막기 어렵다. 국민들이 [私人]으로서만 사고하고 행동하여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公民]으로서 행동하고 사고하는 국민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공민이란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간의 조화에 노력하는 민주시민을 의미한다. 공동체에 대한 적절한 책임과 기여를 중시하는 민주시민을 의미한다. 자기이익만 생각하는 극단적 이기적 사인이 많을 때 포퓰리즘과 과격주의의 등장이 용이해진다. 반면에 공동체전체의 가치와 이익을 중시하는 공민이 많을 때---서구적으로 이야기하면 [共和主義的 倫理(republican ethics)를 가지는 공민]이 많을 때, 혹은 동양적으로 이야기하면 [天下意識을 가지는 백성]들이 많을 때---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적 정착이 용이하여 진다

이상의 3가지 방향으로의 노력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 선진화시대의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民本的 民主主義(지도자윤리)와 公民的 民主主義(국민윤리)를 理想으로 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당을 지금의 개인중심의 사당구조에서 국가비전과 정책중심의 공당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이상의 3가지 변화가 있을 때 [한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등장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


6. 맺는 말

산업화시대 민주주의운동의 효시가 1960년 2.28 대구학생의거였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운동의 대구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한민국의 선진화운동]의 꿈 내지 염원이 시작된 것도 바로 대구이다. 1907년 대구에서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때 대구의 한 여성단체가 그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면서 낸 선언문의 마지막이 이렇게 되어있다. “---우리가 이렇게 하여 나라의 빚을 갚아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 자유민이 되어 언제가는 우리나라도 [세계의 上等국가]가 되기를 희망하노라“ 하면서 그 선언문은 끝을 맺고 있다. 1907년 우리 선조들이 꿈꾸었던 상등국가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선진화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우리 선조가 꿈꾸었던 선진국에의 진입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문턱에서 우리는 지금 10여 년간 헤매고 있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정치가 [독재자] [선동가] [과격파]들을 잠재우고 명실 공히 자유민주주의를 아직도 이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하여서이다. [민본주의가 없는 민주주의],  [민주적 공민이 없는 민주주의], [근대적 공당이 없는 정당구조]는 모두 사상의 누각이 되기 쉽다. 따라서  [민본적 민주주의], [공민적 민주주의], [근대적 정책정당]을 통하여 이 땅에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올바로 세우는 일이 바로 선진화시대 우리 민주주의 운동이 이루어야 할 시대적 과제이고 역사적 大義이다.

환언하면 민주화이후 자유화까지 성공시키는 것이 바로 [선진화시대 민주주의운동]의 과제이다. 대구의 2.28 정신이 민주화 이후 나타나기 쉬운 포퓰리즘과 과격주의를 극복하고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시켜 선진화시대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데 앞장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구의 민주정신이 한 번 더  새로운 역사창조에 프로티어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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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이홍구] 건강한 국민, 병든 정치 09-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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