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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소비자를 사기치는 카르텔
 
2009-12-22 14:12:53

시장거래는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사고파는 사람은 서로 속이지 말고 공정한 대가를 주고받아야 하며 계약 이행이 차질을 빚을 때도 일을 공정하게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함의 구체적 내용이 문제다. 철이네 공장에서는 바지를 제조하는데 이 바지가 어느 수준의 가격으로 팔려야 공정한가?

철이네 바지는 처음에는 다른 회사 바지와 마찬가지로 한 개 2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그러나 품질과 디자인이 호평받으면서 주문이 몰려들었고 철이네 바지는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주문을 소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물량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더 높은 값에라도 사겠다고 나서는 통에 철이네 바지는 다른 바지보다 5배나 비싼 10만원에 팔리고 있다. 생산 원가는 전과 마찬가지인데 2만원 하던 바지가 10만원짜리로 그 값이 올라 버린 것이다. 이렇게 올라 버린 가격 10만원은 공정한 가격일까?

다른 바지는 2만원에 팔리는데 철이네 바지만 10만원에 팔리는 까닭은 철이네가 강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비자가 그 값을 내고도 자발적으로 사 가기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지 가격 10만원을 불공정한 가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철이네 바지에 대한 소비자의 평가가 다른 회사의 바지보다 월등하게 좋으면 그 가격은 공정한 경쟁을 거쳐서 높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철이네 바지가 다른 회사의 바지와 같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평범한 품질이라 하더라도 10만원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수요의 법칙에 따르면 사람들은 바지 값이 오르면 덜 사고 내리면 더 산다.

이 사실은 모든 바지 생산업자들이 일제히 공급량을 줄이면 바지 값이 올라가고 늘리면 내려감을 뜻한다. 만약 바지 생산업체들이 모두 모여서 바지 값이 10만원을 유지하도록 공급량을 줄이기로 합의한다면 바지 가격은 10만원이 되고 누군가 합의사항을 위반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된다. 그렇다면 이때의 가격 10만원은 공정한 가격일까?

바지 생산업체들이 모여 가격을 올리기 위해 공급량을 줄이기로 합의하면 사업자들 간의 시장경쟁은 소멸한다. 이처럼 경쟁을 없애고 책정한 가격 10만원은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서 형성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한 가격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업자들이 합의해 시장경쟁을 없애는 행위를 담합(collusion) 또는 카르텔(cartel)이라고 한다.

담합은 시장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예외 없이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담합에 참여한 사업자에게는 벌칙으로 과징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징역형과 같은 형사처벌까지 함께 내린다. 미국 반도체 시장의 담합에 참여한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업체의 임원도 미국에서 징역형을 받은 적이 있다.

 

♤ 이 글은 2009년 12월 16일 한국경제[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에 실린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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