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는 광복 이후 최대의 포퓰리즘
정치신뢰는 무슨…지도자들 사죄부터
■ 대담=손현덕 정치부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한국 보수의 지성을 대표하는 이론가다.
2005년 한나라당이 행복도시법에 합의하자 당시 정책위의장이었던 박 교수는 의원직을 내던지고 정계를 은퇴했다. 최근 논란이 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축으로 하는 노동법 개정안 역시 김영삼(YS) 정부 시절 사회복지수석을 맡았던 그의 작품이다. 그가 주창한 `한반도 선진화론`은 한나라당의 핵심 당론이다. 그가 2006년 설립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은 한국 보수 진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과 인터뷰 대담은 지난달 29일 서울 반포의 박 이사장 개인 집무실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대담을 통해 박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 정치 지도자들은 세종시 문제를 포퓰리즘적으로 다룬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지금은 정부가 어떤 대안을 만들어 내놓을지 기다려야 할 때"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2005년 행복도시법 통과 당시 국회의원직까지 내던지면서 반대했는데. 지금 현재 상황이 그때와는 어떻게 다른가.
▶전혀 다르지 않다. 세종시 문제는 당해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이고, 또한 국가적으로 낭비와 고통이 대단히 큰 잘못된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 일부 국민의 정서에 영합하여 국익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 행위다. 세종시 문제는 광복 후 최대 포퓰리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본인도 스스로 `선거에 재미를 봤다`고 했지 않은가. 특정 지역 표를 얻기 위해 급하게 만든 인기 영합적 정책으로 그 지역에도 올바르지 않고 국가 전체로도 크게 잘못된 정책이었다. 정부 부처를 떼놓고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엄청난 낭비와 비효율, 국민 불편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수도가 서울이라는 게 관습헌법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온 뒤에 이른바 행복도시법이 나왔는데.
▶수도 이전은 국가 중대사로 헌법 개정에 준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 헌재의 결정이었다. 올바른 판단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6개는 서울에 두고 9개 부처만 옮기면 수도 이전이 아니라면서 수도 분할을 추진했다. 수도 분할은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 정부 부처보다 차라리 서울대를 옮기는 게 낫다. 서울대는 서울에 없어도 교육에 큰 문제가 없지만 정부 부처를 나누면 국정 운영이 안 된다. 서울대와 함께 아시아 최고의 아시아 대학원ㆍ대학 등을 만들어도 좋다. 토지는 이미 확보된 만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상설화돼 사무국 등이 필요할 때 우리가 공주로 유치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매일경제신문은 지난 3월부터 세종시 논의를 주도적으로 끌어왔다. 행복도시법 통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이 최근 정치적 신뢰가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과거 좌파 포퓰리즘이 추진하고 우파 포퓰리즘이 이에 타협하면서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도 우파가 포퓰리즘의 덫에 걸려 우물쭈물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말한 정치 신뢰가 무엇을 위한 정치 신뢰인가가 문제다. 약속도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가가 문제다. 세종시 문제는 처음부터 국가 이익 때문이 아니라 특정 지역 표를 의식한 인기 영합 정책이었다는 것을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후보 당시 표를 의식해서 불분명한 태도를 취한 것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박 전 대표도 마찬가지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국가 지도자라면 지금처럼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애국심이 적은 것 같다. 당리당략만 많다. 모두가 객(客)이고 진정한 주인, 진정한 지도자는 없는 것 같다.
-2005년 당시 한나라당이 행복도시법을 의원총회에 부쳐 당론으로 확정했다. 정책위의장으로서 당론은 받아들여야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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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국가정책을 공부한 사람으로 당시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국 헌정사에 아무리 얼룩진 역사가 많다고 해도 더 이상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회 지식인들이 이 땅의 정론을 세워야 한다. 지난 10년간 지식인도, 시민단체도 대부분 정파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지식인 집단과 시민단체의 도덕성이 많이 깨졌다. 세종시 해법은 일단은 정부가 만드는 안을 좀 기다려야 한다. 정치 이슈화는 그만하고 기다려야 한다. 결국 대통령이 나와서 얘기해야 한다. 그래도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차라리 낫다.
-YS정부 당시 사회복지수석으로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을 서로 맞바꾸는 법안을 처음 제시했는데.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노조 전임자에게 회사가 임금을 주는 관행도 후진국의 어용노조 말고는 전 세계에 그런 예가 없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시행해야 한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잘하고 있다. 우리 노사관계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복수노조에 대해서 교섭권을 한쪽에다 준다는 것은 왜 논쟁인가.
▶선진국 예를 보아도 그러하지만 복수노조가 돼도 교섭권을 어느 한쪽이 대표하게 된다. 누가 대표를 할 것인가를 선출하는 공정한 룰이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복수노조를 해도 아무런 혼란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법으로 복수노조를 허용한다고 노조가 반드시 여러 개 생기는 게 아니다. 현재 노조가 잘하고 있으면 왜 제2 노조가 나오겠는가. 나와도 곧 하나로 정리된다.
-선진화의 걸림돌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선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 아래서는 법치가 생길 수 없고 자유와 민주가 될 수 없다.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두 나라에 불과하다. 아르헨티나 체코 브라질 등은 선진국 진입에 실패했다. 선진국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고령화 등을 감안하면 10~15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전에 국민 의식 개혁,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역사 주체가 있어야 한다. 산업화 시대는 주체가 있었다. 민주화도 주체가 있었다. 하지만 선진화는 주체가 없다. 경제는 선진국 진입 문턱에 있는데 사회는 낙후돼 있고 국제적 공헌도 낙후돼 있다. 이런 모든 것을 고치려면 새로운 역사적 주체가 있어야 한다.
-매일경제가 주최한 제10회 세계지식포럼에선 원 아시아 구상이 제시됐다. 세계 중심축은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지만 정작 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아시아 공동체가 반드시 나와야 하며 반드시 나올 것이다. 주도적 역할을 대한민국이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가 통일돼야 한다. 아시아 공동체 최대 장애는 핵을 가지고 역사의 대세를 역주행하려는 북한의 존재다.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이 한시바삐 이뤄져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만주와 시베리아 동부를 중심으로 동북아시아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개발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현재 서해는 유럽 지중해와 같이 통상과 교역, 관광과 문화의 내해가 될 것이다. 수백 개의 페리호가 다닐 것이다. 그러면 동북아개발은행도 설립될 것이다.
-흡수통일론을 얘기하는데 북한은 지금 김정은 후계 체제로 소프트 랜딩이 가능한 것 아닌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서서히 개혁ㆍ개방으로 나가서 소프트 랜딩을 하는 게 이상적이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전국의 병영화 속에서 핵을 보유한 강성대국 체제가 아니면 김정일이든 김정은이든 체제 유지가 안 된다. 결국은 하드 랜딩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해외 전문가들은 북한에는 더 이상 길이 없는데 남한은 도대체 뭘 하느냐고 묻는다. 시간이 없다. 통일 한반도 없이는 동아시아 평화의 번영도 있을 수 없다.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나라가 대결하면 반드시 패권 경쟁으로 가서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있었다. 중국 일본과 함께 통일 한반도, 이 세 나라가 정립해야 반드시 동아시아에 균형과 평화가 올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자기 전략 일변도로 처리하게 되면 한반도에는 새로운 분단이 등장할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는 분단 관리에 더 무게를 두는 것 아닌가.
▶그게 잘못됐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는 통일을 논의하지 못하게 했다. 그 대신 평화만을 강조했다. 흡수통일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통일 비용만을 과장했다. 적지 않은 국민이 통일에 소극적이 되고 외면하는 경향까지 생겼다. 모두가 안주하고 있는 사이에 북의 체제 위기가 닥쳐왔다. 강 건너 불 보듯 하면 이제 한반도 역사는 또 한 번 분단의 수난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통일과 선진화의 기회도 사라질 것이다.
■ He is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한국 보수 지성의 거목(巨木)이다. "보수는 철학이 없고 진보는 정책이 없다"고 주장하는 그는 한반도 선진화 전략과 공동체 자유주의론 등을 통해 한국 보수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탄생을 주도했고 김영삼 정부 때는 청와대 정책수석과 사회복지수석을 맡아 사법ㆍ교육ㆍ노동 개혁 등 `세계화 개혁`에 앞장섰다. 저서로는 법경제학, 한반도선진화 전략, 공동체 자유주의(공저), 대한민국 국가전략 등이 있다. △1948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KDI 연구위원 △서울대 교수(1985년~) △청와대 정책기획수석ㆍ사회복지수석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국회 범국민정치개혁위원회 위원장 △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장ㆍ정책위의장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정리 = 이근우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 이 글은 2009년 11월 2일 매일경제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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