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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인질 외교, 더 이상 없게 해야 한다
 
2009-08-19 15:18:29

 

인질 외교, 더 이상 없게 해야 한다

 

3월30일 이래 북한 당국에 억류돼 있던 개성공단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씨가 136일 만인 13일 귀환했다.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의 길을 순항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재발해서는 안 될 사건이다. 북한은 유씨를 ‘탈북을 책동하고 체제를 비난하였다’는 이유로 장기간 억류했다. 억류 기간에 피조사자의 기본적 권리인 변호인 접견권과 면접권을 거부했다. 이는 개성공단 근무 한국 근로자에 대한 명백한 기본적 인권유린 행위다.

지난해 말부터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장거리 미사일 발사, 2차 핵실험과 같은 조치로 남북관계와 국제사회 관계에서 긴장의 수위를 높여왔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안 제1874호를 자청한 셈이다. 종전과 달리 중국과 러시아가 결의안 제1874호에 적극 동참했다. 또한 우리의 대북정책도 원칙을 지키면서 의연하게 대처해 나갔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북한에는 고통 그 자체였다. 북한 주민들은 ‘제2 고난의 행군’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로 동요했다.

결국 북한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 변화는 긴장의 수위 조절을 강요했다. 북한은 수위 조절의 수단으로 ‘인질의 무기화’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인질 석방의 카드를 내놓았다. 그래서 북한은 궁여지책으로 미국 여기자와 유씨를 석방했다. 따라서 이번 인질 석방은 인도주의의 정신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전략전술 산물이기 때문에 찬사의 대상이 아니라 비난의 대상임이 분명하다.

인도주의는 인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국제사회가 ‘인질의 무기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인질의 무기화’가 인권 유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인질은 당연히 석방돼야 하고 바로 석방돼야 한다는 것을 규범화하고 있다. 북한은 국군포로와 납북자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직도 강제적으로 억류하고 있다. 특히 7월30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고장으로 월경한 ‘연안호’ 선원 4명을 조속히 귀환시켜야 한다. 같은 날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우리는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바로 돌려보내지 않았는가?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비인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금강산에서 피살된 박왕자씨 가족들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에서 조사와 사과도 선행돼야 한다.

개성 인질의 석방은 남북관계에서 수많은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제거된 것일 뿐이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돼 민간인의 북한 방문이 확대되면 ‘제2, 제3의 유씨’가 발생할 가능성이 짙다. 따라서 신변안전 보장 장치와 관련된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북한과 한국인의 신변안전 문제와 관련된 합의는 2004년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가 있다. 이 합의서는 개성 인질 사태로 규범력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기 때문에 그 합의정신의 복원이 시급하다.

그리고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의 세부 내용도 보완돼야 한다. 이번 개성 인질사건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우선 개성과 금강산 이외의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에 대한 보장장치가 전혀 없다. 또한 북한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한 모호한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피조사자의 기본적 인권 보장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변호인 접견권과 면접권을 명시하고, 위반과 위법의 정도에 따른 조사·구금기간을 명시해 장기억류를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그리고 개성 인질 석방은 남북관계 정상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원칙있는 대북정책으로 견실한 관계 정립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8월 19일자 문화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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