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경쟁력, 문화의 재발견
7일 개막된 인천세계도시축전을 보면 ‘도시’가 초대형 행사의 테마가 될 만큼 시대의 중요한 화두(話頭)로 등장했음을 실감한다. 이날 대통령의 축사를 빌리면 20세기가 국가 간에 경쟁하는 ‘국가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도시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시의 시대’가 됐고,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도시가 역사의 무대에 주역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인류가 한곳에 정착하여 모여 살면서 탄생한 도시가 있었기에 문명의 발원이 가능했고 이후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세계 역사는 도시 간의 경쟁으로 점철됐다. 오늘날 도시의 재발견은 국경을 초월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특징지어지는 세계화(globalization)에 의해 이뤄진다.
복제할 수 없는 매력 지녀야
대표적으로 유럽의 경제적 통합으로 인해 기업의 입지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국가가 아닌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도시를 선택하는 문제가 됐다. 중국 동부 연안의 도시 중산층이 휴가와 쇼핑을 즐기는 장소로 뱃길을 통한 우리나라의 서해안 도시를 선택한다면 국경을 초월한 도시경제권도 형성될 수 있다. 결국 런던이 도시 간 경쟁에서 기업을 유치하면 영국의 국가경쟁력이 높아지듯이 우리나라의 서해안 도시가 중국 동부 연안의 관광객과 쇼핑객을 유인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이 제고된다.
도시의 경쟁력은 도시에 살고 싶거나, 비즈니스를 하고 싶거나, 방문하고 싶은 매력을 총칭한다. 도시는 많고 다양한 활동이 모여 규모와 집적의 경제를 통한 편익을 창출하지만 반대급부로 혼잡과 오염에 따른 피해도 유발한다. 따라서 도시경쟁력은 우선 도시에서 활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인프라 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 달려 있다. 교통체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도로 철도를 확충하고, 물을 안심하고 마시도록 상하수도 시설을 정비하고, 집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주택을 풍부히 공급하고, 자녀 교육이나 진료에 걱정이 없도록 질 좋은 교육,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나아가 세계 도시와의 경쟁을 위해서는 영어가 소통되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인프라는 도시경쟁력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세계 어느 도시나 기업과 사람을 유치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일 뿐이다. 세계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역설적으로 지방화(localization)를 통해 다른 도시에서는 복제할 수 없는, 그 도시만이 갖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유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도시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가 지니는 다양성이다. 서울의 한강이나 남산을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듯이 모든 도시의 역사와 문화는 각기 다르다. 자연환경의 생명력이 생물의 다양성에 있듯이 인간이 만든 도시환경의 경쟁력은 궁극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에 있다.
시민이 찾아야 관광객도 찾아
도시 고유의 문화는 누가 만드는가? 결국 그 도시에 사는 시민이다. 뉴욕이나 런던이 세계에서 재방문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꼽힐 만큼 경쟁력을 갖는 이유도 거리마다 골목마다 다양한 시민들의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어 사람 구경만으로도 즐겁기 때문이다. 아무리 넓은 도로를 내고 멋진 건물을 짓고 최첨단 인프라를 깔아도 시민이 즐겨 찾지 않는 공간이 되면 도시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일본 관광객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관광지는 한 번 보면 다시 찾을 이유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를 다시 찾는다면 그 이유는 동대문시장에서 보듯 밤새도록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8월 10일 동아일보[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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