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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입학사정관제 구세주 아니다
 
2009-08-06 15:51:29

 

입학사정관제 구세주 아니다

3不 교육정책과는 양립 어려워, 투명한 자료ㆍ자율보장돼야 성공

 

서남표 KAIST 총장이 지난 3월 무시험 · 면접만으로 학생을 뽑겠다고 선언한 이래 입학사정관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특히 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믿음이 놀랍다. 최근 대통령은 "입학사정관제가 잠재력과 인성이 있는 숨은 인재를 선발할 수 있고" "사교육 받지 않고도 대학에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과외 받고 성적 좋은 사람만 좋은 대학에 가고 인정받는 시대를 마감하겠다"는 발언을 연이어 터뜨렸다.

입학사정관제도가 정말 그런 기적을 만든다면 우리는 광화문광장에 '교육구세주 서남표'의 동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입학사정관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해 앞으로 기적을 만들지 괴물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난데없이 '입학사정관 신화(神話)'가 퍼져 정부의 236억원 지원 결정,대학들의 경쟁적 참여,그리고 대통령의 "사교육시대 마감" 장담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이제 학부모들의 환상이 대책 없이 부풀 터인데 향후 실패하면 그 분노와 조롱을 누가 다 받을 것인가. 지금 우리 관료나 대학은 우선 이 제도의 본질부터 공부해야 한다.

입학사정관제는 한마디로 '사정관 마음대로 신입생을 뽑는'제도다. 따라서 자율과 책임,투명성과 시장경쟁이 국가규범과 시민문화로 자리 잡힌 사회,곧 미국이 만든 제도다. 우리의 3불 교육정책과는 양립(兩立)이 불가능한 제도며,사실 국가가 돈을 퍼부어 입학사정관제도를 '육성'한다는 사실 자체가 난센스 규제인 것이다.

이 제도의 요체(要諦)는 사정관이 어떤 이유로 누구를 뽑든 학부모가 100% 결과를 인정하는 것이다. 향후 알 수 없는 이유로 대학이 무더기로 불합격자를 쏟아낼 때 우리 학부모들은 승복할 것인가. 우리는 수능시험 오답 하나에 일대 난리를 치르는 나라다. 지금부터 수백 수천의 사정관이 급조돼야 하고 그들의 자질,철학,선발관점은 천차만별일 것이다. 향후 수많은 불공정 논란,언론비판과 학부모 소송이 잇따르면 정부는 가위를 들고 나설 것이다. 이런 나라는 입학사정관 같은 자율제도가 뿌리내릴 기회를 주지 않는다.

입학사정관이 무시험-면접만으로 잠재력과 인성을 갖춘 숨은 인재를 발굴한다는 말을 믿는가. "말재주가 교묘하고 표정을 잘 꾸미는 사람(巧言令色) 중에 어진 사람이 적다"고 말한 분은 다름 아닌 공자(孔子)다. 필자는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정관 자체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입학사정관은 지원자의 온갖 기록을 찾아내야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사실 정직하고 투명한 '비교자료'가 없으면 이 제도는 끝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 교육정책은 학생 간 학교 간의 변별력 데이터를 제거해왔다. 역설적으로,당국이 대입본고사,출신학교 차별,학생실력을 테스트하는 논술과 면접 등 모든 선별수단을 금지하므로 대학이 찾아낸 자율방위책이 입학사정관일지 모른다. 대학은 이를 이용해 특목고 자사고생을 우대하고 개인학력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에 대비해 시장에서 거액을 주고 사정관의 입맛에 맞을 이른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낼 것이다. 입학사정관이 사교육을 어떻게 퇴출시킬 수 있겠는가.

따라서 입학사정관제는 자율,경쟁,투명성,인내심이 없는 나라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대학은 권력자의 자제,동문자제,명문고교 출신,학력우수자,사회활동자 등 무엇이든 마음대로 섞어 입학허가자를 뽑는다. 대학은 그 선택에 따라 '시장의 신뢰'를 얻고,시장은 온갖 브랜드,품질,비용의 교육을 생산한다. 미국의 대학을 세계최고로 만든 본질은 자율교육제도이고 그 탈을 쓴 것이 입학사정관제다. 지금 우리가 교육은 규제로 묶고 입학사정관제만 욕심내는 것은 원숭이에게 예쁜 옷을 입혀 미인을 만들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이 글은 2009년 8월 2일자 한국경제[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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