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절차 바로 서야 정의도 뒤따라 서는 법
있는 길 찾기 어려우면 새 길 닦아나가는 것이 역사"
지난 1월 20일 서울 용산 재개발 구역 철거민 40여명이 근처 건물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다 경찰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불에 타거나 숨이 막혀 죽었다. 참혹한 사건이긴 하지만, 비슷한 사건은 세계 대도시의 확장 또는 정비단계에서 간간이 일어났다. 대부분 국민은 잊었겠지만 그 용산 참사로 숨진 철거민 5명의 시신(屍身)이 지금도 서울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냉동 보관돼 있다. 어제로 185일째를 넘어섰다. 철거민 유족들과 그 등 뒤의 대책위는 정부와 서울시에 대통령의 사과·유가족에 대한 보상·철거민 생계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시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엔 유족과 대책위가 시신을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옮겨 국민영안실을 차리고 여차하면 청와대로 끌고 가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용산사건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유족과 재개발조합이라는 정부 입장이 변하지 않는 한, 세계도시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신 투쟁은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용산 참사는 대한민국의 갈등 조정과 분쟁 해결 능력이 사회의 건강한 존속과 작동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저하(低下)됐음을 가리키는 경고 사인이다. 축구로 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옐로 카드를 받은 것이다. 이해(利害)가 엇갈리는 당사자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첫 단계는 사실(事實)이 실제 어떠했는가를 확정하는 것이다. 누구의 무슨 행동이 어떤 사태를 불러와 어느 과정을 밟으며 이런 결과에 이르렀나를 먼저 객관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각 당사자의 잘잘못을 저울에 올려놓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대한민국에선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일수록 사실 관계를 객관적으로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건 당사자들은 우리가 만들고 겪는 사실이 흑백 영화의 화면처럼 '나의 진실'과 '너의 거짓'이란 두 쪽으로 거울 깨지듯 쫙 갈린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실이 '나의 진실'과 '너의 거짓' 혹은 '나의 거짓'과 '너의 진실'이 켜켜이 쌓이거나 함께 버무려지면서 만들어진 다면체(多面體)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철거민의 불법 행동'과 '경찰의 무리한 진압'이 맞물렸던 두 얼굴을 한 용산 참사의 진실은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애물덩이 진실'이 되고 만다.
광우병 소동으로 시작해 작년 올해 이 사회를 진동시킨 모든 대형 사건이 이런 코스를 밟아왔다.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 사회의 분쟁 해결 절차와 장치들도 하나하나 망가졌다. 그릇이 온전해야 물도 온전히 퍼담을 수 있다. 그릇의 모양에 따라 물의 모양도 달라진다. 절차와 정의와의 관계도 그릇과 물의 관계와 같다. 온전한 절차로만 온전한 정의를 퍼담을 수 있다. 이 빠진 두레박으론 이 빠진 정의밖에 길어올리지 못한다. 공평무사(公平無私)하지 못한 법적 절차의 권위 붕괴와 '정의는 나의 편'이라는 사이비(似而非) 성인(聖人) 집단의 법적 절차를 향한 공격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출현했는지는 모른다.
따져보면 국민들에게 법적 절차가 물리적 폭력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허물어지는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줘 온 극장은 국회의사당이다. 법률안이 법적 절차를 밟아 상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정된 법률안이 법적 절차대로 토론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법적 절차를 따라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도 거의 없고, 본회의에서 법적 절차를 밟아 표결되는 법안도 거의 없다. 정당 간부들의 상당수는 유사시엔 출입구 대신 의사당 창문을 개구멍처럼 이용한다. 쇠톱과 망치가 의사봉만큼 자주 등장하고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낯뜨거운 대리투표 논란도 여전하다. 산모(産母)들 행실이 이 지경이니 그들이 어떤 아이를 낳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여기 기우고 저기 덧댄 누더기 법안이 유독 많고 국회가 만든 법의 유효 여부를 늘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창피스런 꼴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국회한테 합법적 절차의 소중함을 배워본 적이 없다. 정의를 세우려면 먼저 절차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병원 냉장고 안에 여섯 달 동안 꽁꽁 언 용산 철거민들 시신 5구가 누워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놓고 벌이는 유족 아닌 집단의 대리 흥정에는 정의의 그림자조차 어른거리지 않는다. 그렇다 해도 이 사태를 누가 풀어야 하겠는가. 정부 말고 그 책무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재개발조합 사람들 얼굴을 향해 못마땅한 눈총을 쏘아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법적 절차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도 용산 참사의 망자(亡者)들을 묶어둔 이승의 사슬을 끊어 그들이 훨훨 날아가게 할 방도가 있어야 한다. 모든 길이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사람이 밟아 새 길을 뚫은 것이다. 고맙게도 여러 교회 분들도 짐을 나눠 지겠다고 나서고 있다지 않은가.
♤ 이 글은 2009년 7월 24일자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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