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김형준] 미디어법 담판과 역지사지의 정치
 
2009-07-22 10:16:00

 

여야가 핵심 쟁점 법안인 미디어법에 대한 최종 담판에 착수했다. 하지만 의견 차가 워낙 커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한나라당은 2012년까지 지상파의 소유와 경영에 대기업과 신문의 참여를 유보하는 협상안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은 지상파든 종합편성채널이든 보도전문채널이든 신문이 참여하는 것 자체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법이 극적으로 타결되든 결렬되든 간에 이제 상쟁과 공멸의 의회 정치는 끝을 내야 한다. 걸핏하면 점거 농성하고, 수시로 합의를 뒤집고, 소수의 대표들만 모여서 밀실에서 협상하는 후진적인 관행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비뚤어지고 왜곡된 의정 문화를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KBS와 동서리서치가 지난 7월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여야가 서로 반목하는 원인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 부재’(27.2%), ‘국회의원의 자질 부족’(21.6%), ‘상호간의 불신’(17.3%) 순으로 대답했다.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이 잘 안 되는 이유로 ‘보스 중심의 계파 정치’(30.9%)와 ‘당론 중심의 표결’(27.0%)을 가장 많이 지적했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의원들이 자신의 정치 철학과 신념을 갖고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의정 활동에 임해야만 국회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의원들은 ‘나는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는 국회법 46조와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는 114조 2항을 금과옥조로 삼아 정파적 또는 계파적 이익에서 벗어나 국민만을 바라보며 우직하고 양심적인 의정활동을 펼쳐야 한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과거 열린 우리당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난 2004년 열린 우리당은 참여정부의 존재 이유였고 지상 과제였던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을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조차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던 국가보안법은 여론과 야당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하면서 다수 의석을 갖고 있었던 진보세력이 법 개정을 포기했다.

실제로 2004년 10월29일 한 언론기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보완 입법에 대해 찬성은 35.9%인 반면 반대는 58.6%였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분야는 경제회복(75.6%)으로 나타났으며 집권당이 추진하는 정치개혁(7.2%), 과거사문제(2.4%), 언론개혁(1.3%)은 우선순위에서 뒤처져 있었다.

국민의 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은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도 일방적으로 관철시킬 수 없다. 또한 국민이 요구하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는 법안을 힘으로 밀어붙일 경우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려는 권위주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민생우선의 서민 정책을 펼치며,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야당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바로 여당 성공을 위한 근원적인 처방이다.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의 나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 쟁점에 대해선 국민앞에 떳떳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심판받아야 한다. 더욱이 목적이 합당하면 이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 불법이라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편의주의적인 시각도 버려야 한다. 걸핏하면 국회를 포기하고 길거리로 나가 투쟁하는 자기 부정적이고 패배주의적인 행보도 자제해야 한다. 엄밀히 따져 보면 이번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승자는 없고 모두가 패자이다.

성공하는 정치의 핵심은 민심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여야 모두 민심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민심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마치 공기를 거부하면서 결국 질식되어 죽음의 길로 가는 것과도 같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7월 22일자 서울신문 [김형준 정치비평]에 실린 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날짜
645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선진화 포용통일론 (선진화 통일론) 09-09-01
644 국회보 (2003년 12월호) '정치개혁,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09-08-28
643 [이인호] 편향된 역사인식의 깊은 뿌리 09-08-26
642 국가선진화와 한국불교의 역할 09-08-25
641 우리 나라 고등교육의 선진화 방안과 과제 09-08-25
640 [조영기] 인질 외교, 더 이상 없게 해야 한다 09-08-19
639 대화문화아카데미 창립 40주년 기념 대화모임 발표문 [세계화와 양극화] 09-08-11
638 [희망국민연대 창립대회 기조연설]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09-08-11
637 삼성경제연구소 토론회 [세계화의 미래 : 후퇴인가? 전진인가?] 09-08-11
636 [주재우] 미(美)·중(中)의 대북인식 차이 09-08-10
635 [최막중] 도시경쟁력, 문화의 재발견 09-08-10
634 [최양부] 동네 수퍼가 선진적 농산물 유통체계 갖춰야 09-08-10
633 [김영봉] 8·15 사면에 법이 무너진다 09-08-10
632 [김영봉] 입학사정관제 구세주 아니다 09-08-06
631 [강천석] 용산참사 망자(亡者)들 이승의 사슬 끊어주라 09-07-27
630 [김진현] 기적적 성공 그리고 치명적 실패 09-07-27
629 [이승훈] 현실의 공공재 공급은 시장이 해결 못하기에 정부의 몫 09-07-23
628 [김형준] 미디어법 담판과 역지사지의 정치 09-07-22
627 [강경근] 개헌논의, 국민공론과 소통해야 09-07-22
626 [신도철] 세종 '정치공조(共助)' 특별시 09-07-22
91 92 93 94 95 96 97 98 99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