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회담 교착, 기로에 선 개성공단
남북한은 2일 개성공단에서 공단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제3차 실무회담을 가졌지만 차기 회담의 일정도 논의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토지임대료 5억달러 지급을 사실상 선결 과제로 요구하면서도 억류 근로자 문제를 포함한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일체의 논의를 거부했다. 한국 입주 기업들의 기대와는 달리 결국 회담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난 것이다. 더욱이 다음 회담 일자도 잡지 않아 공단의 미래는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3개월 이상 인질 상태인 근로자의 석방 문제는 암울한 공단의 앞날만큼이나 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터무니없는 요구가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의 파행은 지난해부터 이미 시작됐다. 북한은 일방적으로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상주하는 한국 당국자 추방, 개성공단 체류 인원 제한과 육로통행 차단 조치를 취하면서 파국의 강도를 높여 온 것이다. 그리고 6월에는 임금을 300달러로 인상할 것과 토지사용료 5억달러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하나같이 지시에 무조건 따르라는 일방통행의 명령이었다. 개성공단사업과 관련한 합의를 할 때부터 북한이 이 합의를 지킬 것이라고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음을 과시라도 하듯 멋대로 약속을 파기했다.
지금까지 북한은 유리한 협상 결과를 위해 언제나 비정상적인 방법을 협상전략으로 구사했다.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해 더 많은 과실을 얻어내거나 한국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의제를 제시함으로써 지치게 만들거나 북한에 유리한 의제만을 지속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한국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을 구사해 온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협상 방식을 ‘상대방 제압하기(outmaneuvering)’ 전략이라고 한다.
최근 북한이 개성공단의 운영상 또는 현안과 관련해 과다한 토지 사용료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도 일방적으로 통행을 차단하거나 억류 인질 석방을 거부하는 것 등은 모두 한국을 지치게 만들려는 협상전략이다. 이때 북한은 어떤 양보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북한이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한 뒤에 원칙을 세워야 북한의 비정상적 협상전략을 봉쇄할 수 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전 정부의 햇볕정책 산물이다. 햇볕정책은 ‘교역을 통해 평화를 가져온다(peace through trade)’는 평화이론에 그 논리적 근거를 두고 있다. 평화이론은 양국에 언제나 평화만을 가져 오지 않는다. 햇볕정책이 갈등과 반목을 유발하기도 하는 현실을 무시함으로써 늘 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로 이어진 지난 10년 동안은 북한의 핵실험에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도 ‘평화’만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북한은 더욱 더 한국에 대해 무례했고 독불장군식 행태를 보였다. 평화이론의 족쇄가 되어 2006년 10월의 제1차 핵실험 이후에도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변화를 도모하지 못했다.
남북관계에서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역할은 분명히 있다. 남북한의 약속과 합의가 준수될 때 신뢰가 구축되고 이를 발판으로 입주 기업들이 제약없이 활발하게 경영 활동을 할 때 공단의 효용가치도 높아진다. 반면 지금처럼 북한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억지를 부리고 생떼를 쓴다면 개성공단의 존재 가치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공단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면 입주 기업들의 철수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따라서 북한은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할 게 아니라 기업의 경영 애로사항인 ‘통행·통신·통관’의 3통 문제를 해소해 기업의 철수를 막아야 한다. 그래야 개성공단도 살고 북한도 산다.
♤ 이 글은 2009년 7월 4일자 문화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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