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日)언론만큼 집요했으면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거명되는 김정운의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며칠 전 일본의 아사히TV가 공개한 사진이 오보로 판명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진 점을 감안하면, 일본에서 김정운 사진 입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함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이고, 더구나 최고지도자와 그 가족에 관한 사항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왔기 때문에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 외에는 접근이 매우 어렵다.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 김정일의 사진이 보도되기는 하지만 김정일의 육성은 1992년 인민군 열병식에서 "조선인민군에게 영광 있으라"고 했던 아주 짤막한 격려사 외에는 일절 알려져 있지 않다.
1980년대 납북된 최은희·신상옥씨가 김정일과의 면담을 비밀리에 녹음한 것과 2000년,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발언, 그리고 2000년 8월 남측 언론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겨우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김정일의 개인 신상에 관해서는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 일가의 회고록인 '등나무집'과 '평양의 로얄패밀리' 등 국내에서 출판된 책과 일본인 후지모토씨가 쓴 '나는 김정일의 요리사였다'라는 책이 관련 사진과 함께 그의 실제 모습을 비교적 상세히 보여주었을 뿐이다.
북한은 전략적으로 최고지도자 김정일과 그의 가족의 일상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차단하려는 것 같다.
그에 관한 수많은 일화와 영웅담을 온갖 매체를 통해 선전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모습을 감추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일과 그의 가족사가 허구화되고 우상화되었기 때문이다. 그와 그 가족의 평범성과 허구성이 알려지면 그만큼 내부결속이 급속히 와해되고 외부로부터의 공세가 치열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는 선군정치의 강경군사노선과 허장성세의 공갈협박, 그리고 지도자에 관한 신비주의와 비밀주의가 결합된 선전선동술에 근거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북한 지도부에 관한 정보가 유출되면 될수록 체제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 내부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것은 상업주의적 언론의 경쟁 속성에 기인한 점도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북한체제의 허구성과 세습체제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결정적 계기이자 북한체제의 장래를 예측하는 귀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김정운의 사진 한 장을 구하기 위해 스위스 현지를 샅샅이 뒤지고 장남 김정남이 해외에 나올 때마다 집요하게 추적해 인터뷰하는 일본 언론의 모습은 우리 정보기관이나 언론이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
♤ 이 글은 2009년 6월 16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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