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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근] 국민 위한 사법부 개혁을 하라
 
2009-05-26 10:04:18


국민 위한 사법부 개혁을 하라

판사회의 대중적 집회 변질우려
사법부독립 그들만의 리그 안돼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재직시 촛불 재판에 대한 사건 배당 및 처리 권고에 대해 이용훈 대법원장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권고를 확대 수용해 그를 엄중 경고하고, 법관의 마음의 상처 및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손상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면서 재판상 독립 보장을 위한 법관과의 공동 노력을 강조했다.

대법원장의 ‘엄중 경고’는 신 대법관 행위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전한 사법행정상의 조치로도 보기 어려운, 그래서 ‘부적절한 행동’이라 판단해 내린 것이라 본다. 사법행정과 사법관여를 가르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는 촛불 집회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하나의 잣대로 명확하게 자를 수 없는 경계선상의 행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독판사의 판사회의에서 개별 사건을 ‘임의’ 배당하고 사건 처리를 ‘독촉’한 것은 법원장의 재량권을 넘은 재판권 침해라는 입장이 표명되면서 대법원은 재판권의 범위, 재판 독립을 침해받았을 경우의 구제, 일선 판사와 법원 수뇌부간 의사소통 등 사법권 독립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최선의 응답을 한 셈이다.

그런데 신 대법관이 공식 사과는 했지만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자 판사회의는 그가 “대법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 면서 사퇴 요구를 한다. 사법부 독립을 위한 논의가 특정 법관의 진퇴를 위한 단독판사의 대중적 집회로 변질된 것이다. 심지어 개별 법관의 신분보장이 사법권 독립과 신뢰회복에 장애가 된다면 사법권 독립 앞에 길을 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논의가 전국법관회의에서 재연돼 지배적 의견화 한다면 법관들의 그 순정과는 별개로, 그날 그 순간은 우리 사법사상 처음으로 법관 스스로 법원을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기한 재판의 법정으로부터 법관 개인의 소신과 그 소신이 합쳐진 여론에 의해 특정인을 재단하는 포퓰리즘의 야단법석으로 변질시킨 날로 기억될 것이다.

특정 법관을 사퇴하라 하는 것은 비록 그가 탄핵의 사유에 해당해 탄핵의 헌법재판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누구도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법관의 내부적 독립에 대한 치명적 침해이기 때문이다. 법관의 독립은 외부의 간섭만 배제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이번 사태를 본 많은 국민은 연륜과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 한참 더 배우고 겸손하게 사건 당사자에게 봉사하면서 재판에 임해야 할 10년 전후의 초임, 중간 법관의 혼자 하는 재판이 헌법과 법률에 기초한 양심에 따른 재판이 되기보다는 각자의 소신 재판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됐다. 중견, 중진 법관, 대법원장이 항상 강조하는 ‘국민을 위한 재판’을 하도록 이끌다가는 그게 언제 어떻게 재판권을 침해한다는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법원 내부적인 지식과 경험의 단절은 사법부 독립이 목표로 하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차제에 국민이 법관의 정당한 재판을 받을 헌법상 권리를 ‘전전긍긍하지 않고’ 보장받을 수 있도록 이를 제도화 하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할 것을 요구한다. 단독판사의 자격을 지법 부장판사 이상으로 하고 합의부를 대폭 늘려야 한다. 변호사 중에서 인품이 성숙된 연륜 있는 분을 판사로 대거 영입해야 한다.

판사들이 사법부 독립의 장애물이라고 항상 주장하는 고법 부장판사를 필두로 하는 법관 계급제는 발전적으로 해체될 것이다. 법관 사회도 사법부 독립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그것 역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재판을 말하는 것임을 진정 깨닫게 될 것이다. 국민이 바라는 사법과 법관의 독립은 자기 방식대로, 자기 소신대로 하는 ‘정치 재판’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적인 법감정에 맞는 ‘규범 재판’을 해달라는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

♤ 이 글은 2009년 5월 18일자 세계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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