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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누가 북한의 버릇을 망쳤는가
 
2009-05-21 14:35:40

 

[시론] 누가 북한의 버릇을 망쳤는가

 

정치에 끌려다닌 투자는 그 크기만큼 오히려 국가의 짐이 된다
지난 친북 정권은 스스로 북한의 갈취 대상이 됐다

 

2002년 개성공단사업은 남북 공동 번영의 장대한 구호(口號) 아래 착공됐다. 공단이 완공되는 2010년에는 남북한 및 외국 기업이 2000여개 유치돼 25만명을 고용하고 연 150억달러를 생산할 것이다. 개성은 제조·금융·상업·관광을 아우르는 세계적 국제 자유도시로 키워지고, 이것은 '남한의 장기적 성장력을 보장하는 돌파구'가 된다는 것이다.

목표연도가 내년으로 닥친 금년 개성공단에는 104개 남한 기업이 입주해 북한 근로자 3만9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2005년부터 금년 4월까지 누적 생산한 금액은 총 5억7400만달러다. 공단 조성을 위해 한국 정부와 토지공사, KT 등이 3600억원을 투입했고 입주 기업들은 3700억원을 시설투자 했다. 추가로 철도, 도로와 배후 물류단지 구축, 공단부지 조성, 전력 공급, 통신 등을 위해 9698억원이 국고에서 지원됐다. 현대아산은 개성지구 개발독점권 7492억원과 시설 투자비 500억원을 지출했으며 50년간 부지임대료 1600만달러는 이미 북한에 지불됐다.

따라서 고정비용으로만 2조5000억원 이상을 지출한 공단이 7000여억원을 생산한 뒤 미래를 알 수 없는 운명이 된 것이다. 북한은 개성공단의 계약 무효를 선언하며 "6·15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6·15의 혜택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남쪽 이득은 한국 경제에서 어차피 퇴출될 사양업종 한계기업의 일부가 북한의 저임금에 기대어 연명하게 된 것뿐이다. 이들이 북측 사유로 투자 손실을 입으면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에서 설비투자액의 90%, 50억원까지 보험금을 지급해준다. 한국 경제의 입장에서는 개성공단이 국민의 조세 부담을 늘리는 데만 기여한 것이다.

북한은 근로자당 월평균 73달러, 한해 총 3500만달러가량을 임금 수입으로 얻는다. 이 돈이 가계 소비를 통해 다른 경제활동으로 이어진다면 북한의 소득은 그만큼 증대하고 소위 승수(乘數)효과도 유발될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정부 발표나 기타 소식에 의하면 북한 노동자는 임금 중 30~35달러만 공식 환율 150원을 적용해 지급받는다고 한다. 암시장 환율이 달러당 2000~3000원이라 하므로 북한 노동자에게 2달러 정도만 지급되고 나머지는 북 당국이 챙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경제에는 남는 것이 없고 북 정권의 체제유지비용만 증가시킬 것이다. 결국 개성자유지대가 오히려 북한 개방과 개혁을 늦추는 꼴이 아닌가?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가. 첫째, 과거 우리 정권은 대북 교류 협력과 장밋빛 남북 공동 번영만 강조해서 거대한 투자를 감행했다. 북한이 이에 부응해 정말 개혁·개방에 진지성을 보였다면 개성공단에는 대기업·외국기업·혁신산업이 넘쳐 들어왔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폐쇄주의 공산독재체제를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남한 돈으로 만든 공단을 남측의 대북정책을 압박하는 볼모로 삼으려 했다. 정치에 끌려다니는 투자는 그 크기만큼 오히려 국가의 짐이 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둘째,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와 경제 교류를 할 준비가 전혀 안 된 나라에 투자했다. 북 체제에는 원래 당(黨)이 각 경제주체 간의 분쟁을 조정하므로 민법, 상법, 계약 따위에 큰 의미가 없다. 이번 개성공단의 일방적 계약 무효 선언은 자본주의 세계의 거래 관행에 무지, 무모한 북한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고 지구촌에 남아 있을 북한의 잠재적 거래 상대도 모두 쫓아버렸을 것이다.

북한은 향후 자본주의 세계의 냉엄한 경제적 과정부터 배워야 중국 베트남과 같이 자력 성장하는 국가를 세울 수 있다. 모든 후발(後發) 성장국은 생산 과정, 거래 과정에서 편취(騙取)되고, 불평등 계약의 비용을 치르면서 자본주의시장 세계의 게임법칙을 체득하게 된다.

이런 비싼 학습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와 기업의 적응력과 경영 능력이 한 걸음씩 신장하는 것이다. 지난 친북 정권 동안 남한은 정치적 고려를 앞세운 대북 거래로 스스로 북한의 갈취 대상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남한은 이렇게 북한의 억지를 용인하면서 그 버릇을 망쳐놓고 북한을 고립의 길로 인도한 것이 아닌가?

따라서 정부는 이번 공단사태의 대책에서 반드시 북한의 방법이 통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의 정치적 협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북 투자는 단지 정치적 올가미가 될 뿐이다. 오랫동안의 정치적 구호인 남북한 동반 번영도 순수한 경제 교류관계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5월 20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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