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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대선 예비주자들 남은 3년 반 이런 정치 할 건가
 
2009-05-08 14:17:54

대선 예비주자들 남은 3년 반 이런 정치 할 건가

 

한나라당, 선거 여왕 따라 一喜一悲 세월 보내나
민주당 전·현직 대표들 언제까지 함께 웃을까

스포츠 세계에선 우승자에게만 금메달이 돌아간다. 한 선수 한 팀만 웃고 나머지는 울음을 안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게 게임의 기본 얼개다. 금메달을 목에 두르고 함박웃음을 터뜨리는 김연아 곁에 선 아사다 마오의 미소는 그래서 슬프다.

어제 아침 신문 사진을 보면 이런 게임의 상식을 허문 스포츠가 한국에 새로 출현한 듯하다. 4·29 재·보선 결과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혼자서만 미간(眉間)을 잔뜩 찌푸린 채 양 관자놀이를 두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통증을 삭이고 있을 뿐 나머지 선거 참가자는 다들 입이 귀에 가 걸렸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웃음소리도 오랜만에 바람에 실려온다. 한나라당에도 웃는 사람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한나라당 주류만 불행해지면 정계 전체가 행복해지는 게 지금의 정치구도인 셈이다.

집권당 대표의 구겨진 자존심은 가슴을 열어보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호남의 2개 선거구는 체면상 후보자를 낸 것뿐이라 통증도 없었을 것이다. 노동자 도시 울산 역시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후보 단일화까지 이뤄낸 터라 당초부터 기대를 걸 만한 곳은 못 됐다. 정말 아프고 시렸던 패배는 부평과 경주의 패배다. 부평은 수도권의 민심 온도를 재본다는 뜻에서, 경주는 '친이당(親李黨)'과 '친박당(親朴黨)' 가운데 누가 앞으로 대구 경북 지역을 수중에 넣게 될 것인가를 가늠해본다는 정치적 의미가 있는 승부였다. 부평에선 민주당에 승리를 내줬고, 경주는 당 공천을 차지한 '친이당'이 무소속의 '친박당'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 말았다.

한나라당은 부평과 경주의 패배 중 어느 쪽 패배를 더 아파하고 있을까. 부평 패배에 대한 반성은 이명박 정권의 국정 운영과 정국 운영 변화로 이어진다. 부평보다 경주 패배의 상처를 훨씬 견디기 힘들어한다면 '친이' '친박' 간 갈등은 한계(限界) 상황 쪽으로 한번 더 굴러갈 가능성이 있다. 당 안팎에선 경주 패배의 충격은 부평 패배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재·보선 이후 국정운영과 정국운영 방식이 바뀌는 게 아니라 '친이' '친박' 간 갈등의 강도와 양상이 더 크게 달라질 거라는 이야기다.

권력을 행사한 크기에 비례해서 책임도 물어야 한다면, 박희태 대표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경주 보선 결과는 대구 경북과 그 접경(接境) 지역 주민들이 이상득 의원을 중심으로 한 '당내(黨內) 여당'과 박근혜 전 대표가 이끄는 '당내 야당' 대결에 대해 내린 정치적 판정(判定)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총선 때는 자파(自派) 후보들 손에 '살아서 돌아오라'는 부적(符籍)을 쥐여줘 기적을 만들어내더니 이번에는 '우리 정치의 수치'라는 한마디로 한나라당 공식 공천후보를 일패도지(一敗塗地)시키는 신통술까지 선보였다. 한나라당한테 이런 박 전 대표를 벌(罰)줄 힘 아니면 껴안을 포용력이 남아 있을까. 힘도 없고 포용력도 없다면 한나라당 굴뚝은 계속 장작이 덜 탄 매캐한 연기를 내뿜으며 국민을 기침 나게 만들 뿐이다.

재·보선 결과에 모두 입이 벌어진 민주당 쪽 속사정도 조금은 수수께끼다. 민주당은 5개 선거구에서 부평 하나 건졌다. 승률 20%다. 그런데도 선거 상황판을 지켜보는 정세균 대표는 눈이 살에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고 있다. 강원도 농가에 칩거하다 부평 선거 지원을 위해 불려나온 손학규 전(前) 대표 눈가에도 오랜만에 웃음이 맺혔다.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고향에 내려간 정동영 전전(前前) 대표도 개선장군처럼 손을 흔든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보면 정세균·손학규·정동영 세 사람은 동고(同苦)는 몰라도 동락(同樂)은 어려운 처지다. 민주당의 전국 정당화 명분을 거머쥔 정세균이 정동영의 텃밭 공천 배제를 밀어붙였던 게 지난 공천 파동이다. 정세균은 자신의 지역구까지 내놓는 극약처방도 마다하지 않았다. 손학규·정동영 역시 '민주당의 전국 정당화'와 '힘있는 대안(代案)정당'이란 깃발 아래 각각 독자적 세력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함께 웃는 것은 정세균은 부평 승리에서 전국정당화의 명분을 건졌고, 손학규는 부평과 시흥 승리의 견인차라는 당내 여론을 얻었고, 정동영은 민주당의 근거지인 호남에서의 영향력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되돌아보면 이번 재·보선은 여·야 모두 2012년을 향해 달려가는 대선 예비 주자들의 힘겨루기 잔치였던 셈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이제 고작 1년 반이 지났고,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아직 3년 반이나 남아있는데도 한국 정치는 이렇게 굴러가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가 선거와 선거 사이의 정치적 휴식이 사라진 상시(常時)선거전(permanent campaign) 체질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미국 정치를 국익(國益) 추구에서 당익(黨益) 추구로, 당익 추구에서 다시 사익(私益) 추구의 정치로 병들게 했다는 상시 선거전 정치의 발톱이 남은 3년 반 이 나라를 어떻게 할퀼지 걱정이다.

♤ 이 글은 2009년 4월 30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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