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플러스 2009년 5월호]
“재정 확대 바람직하지만 구조조정 지연시켜선 안 돼”
감독 · 사후 관리 맡을 성과 평가관제 도입 필요
그는 선이 분명하고 굵다. 공허한 이론과 포퓰리즘을 싫어한다. 철저한 실사구시형 리더십의 소유자다. 옮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명쾌하다. 그런 그를 주변에선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한다. 박세일(61)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다.
재단의 명칭에서 느낄 수 있듯 그가 세상을 보는 키워드는 ‘선진화’다. 탁상공론적인 이론을 연구하는 고만고만한 단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론과 실천으로 무장해 국가 경영을 고민하는 한국의 싱크탱크가 한반도선진화재단(이하 한선재단)이다. “학문을 왜 하는가? 사회적 실천을 위해서다. 학문을 통해 사회적 병을 진단하고, 사회적 실천을 통해 이를 고쳐야 이 땅에 태어나 먹고 살아온 ‘밥값’을 하는 것이 아니냐”(그의 저서 <법경제학> 서문)는 그의 소신이 한선재단에 그대로 녹아있다.
그는 지금 이런 가치적 잣대를 들이대며 우리 사회 보수와 진보, 양대 진영을 향해 “정신 차려라”고 외치고 있다. 공허한 메아리는 아니다. 전직 장·차관, 교수, 기업체 임원 등 그를 좋아하는 인재들이 한선재단 깃발 아래 모여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정책 개발에 열심이다. 이들은 또 매주 일요일 박 이사장과 같이 산에 오르며 한반도의 미래 청사진을 가다듬고 있다.
올해로 3년째 한선재단을 이끌고 있는 박 이사장을 만나 경제 위기 탈출 방안과 위기 이후의 국가 경영 등 불확실성 시대의 해답을 물어 봤다. 인터뷰는 지난 4월16일 오전 서울 반포동에 있는 그의 자유주의공동체 연구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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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 김용태 편집장 / helloyt@chosun.com>
<정리 : 장시형 기자 / zang@chosun.com>
<사진 : 신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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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남짓한 사무실은 창 쪽을 제외하곤 3개 벽면이 책장으로 둘러져 있었다. 꽂혀 있는 책만 해도 수천 권은 돼 보였다. 책상 위는 방금 정리한 듯 깨끗했다. 소탈하고 검소한 연구실이었다. 박 이사장은 미리 전달한 질문지에 대한 답변을 요약, 정리한 문서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논리적이고 달변이었고, 어조의 높낮이가 분명했다.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심각하고 진지한 내용이었지만 가끔 촌철살인의 유머도 던졌다.
▶ 모두들 죽겠다고 아우성입니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묘책은 없습니까?
“이번 위기는 미국의 금융 위기에서 시작됐습니다. 물론 외부 충격 이전에 이미 우리 경제 체질이 많이 약화돼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요. 외부 충격이 국내 경제에 주는 파급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적인 금융 경색으로 인한 외화 유동성의 악화이고 두 번째는 금융 위기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주면서 나타나는 성장률 하락과 실업 증가지요. 외화 유동성 위기는 좀 나아졌지만 실업은 여전히 어렵고요. 결국 추경예산 등을 포함한 재정 확대를 통해 경기의 급속한 후퇴와 실업의 급증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이 우선 시급합니다. 다만 재정 확대가 단순한 ‘소비 지원형’이 아니라 ‘생산성 제고형’이 돼야 해요. 그리고 구조조정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세계 경제의 조속한 회복을 위한 국제 공조도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G20의 의장국이 된 것은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G20에 대한 중요성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 온난화, 빈부 격차, 세계 금융 불안, 대량 살상 무기 등의 국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글로벌 컨버전스가 필요하죠. 기존의 UN이나 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G20이 대안이 될 겁니다.”
▶ 현 정부는 29조여원에 달하는 추경예산 편성과 잡 셰어링 등
일자리 만들기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경기의 급속한 하락을 막기 위하여 재정 확대 정책은 불가피합니다. 다만 가능한 중장기 생산성 제고를 위해 교육 투자, 환경기술 투자, 고부가가치 서비스 투자, 신 성장 산업 분야 투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일자리도 생길 겁니다. 이번 위기가 오기 이전에 우리 경제는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지난 2003년부터 2007년 사이에 세계 경제는 매년 4.6% 정도 성장했는데, 우리 경제 성장률은 4.2%에 불과했어요. 이 기간 동안 미래의 성장률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인 설비 투자율도 1990년대 전반의 10%에서 계속 감소하여 1.1% 수준까지 떨어졌죠.
▶ 최근 정부 정책을 보면 단기적인 프로그램에 치중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보완해야 할 점은 없나요?
“일자리 만들기 등 단기 시혜적 프로그램이 과다한 것 같습니다. 물론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 일시적 효과로 끝나고 중장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장 잠재력과 국가 경쟁력을 제고 할 수 있는 분야에 재정 확대를 집중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또 특히 중요한 것이 지출 확대 못지않게 지출의 실효성을 높이는 겁니다. 그동안 복지, 일자리, 중소기업, 농업 분야 예산의 지출 실효성은 낮은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얼마나 늘리는가보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잘 썼는가가 중요합니다. 비용 대비 효과가 있는지, 당초 목표를 제대로 실현했는지 등등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이번 추경안에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4조5000억원이 편성됐는데, 이 부분의 효율적 활용에 각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살아날 가망이 없는 기업을 지원해 구조조정만 지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그동안 지원만 있었지, 실효성을 따진 적은 별로 없었지요.
“철저한 감독과 사후 관리가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미국이 참 잘하고 있어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대통령 직속으로 성과평가관(CPO: Chief Performance Officer)을 신설했어요. 투자 우선순위는 제대로인지, 지출에 낭비와 부패는 없는지 등을 감찰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감사원을 통해 지출에 대한 일반감사는 합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시적으로 경제 위기 관련 지출에 대해 특별 성과평가관 제도 도입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구조조정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요즘 정부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런 얘기는 쏙 들어간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은 대단히 중요하지만 실행이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옥석 가리기도 쉽지 않고요. 구조적으로 경쟁력을 잃은 한계 부문과 일시적 금융 경색 등으로 어려운 부문을 구별해야 합니다. 공기업·중소기업·농업 기업 등에는 ‘좀비 기업’이 많아요. 움직이지만 죽은 기업이죠. 어렵지만 반드시 구조조정을 해내야 위기 이후 새로운 도약이 가능합니다. 해내지 못하면 내년 초쯤 경기가 일시적으로 반등한 후에도 경기 흐름이 ‘더블 딥’이나 ‘트리플 딥’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행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혼연일체가 돼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영 아닌 것 같은데요.
“지난해 안식년 중 미국에 머물면서 위기 극복 과정을 직접 지켜봤습니다. 미국에 금융 위기가 왔을 때는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었어요. 그 와중에도 위기가 오니 여야가 혼연일체가 돼 정부가 요구하는 지원 패키지의 입법화 등의 조처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 의회는 청문회를 통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공론화하고,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보고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는 국가 경영형 정치가 아닌 권력 투쟁형 정치죠. 그것도 붕당들 간의 권력 투쟁이죠. 소수의 지도자와 그를 둘러 싼 문객만의 패거리 정치 경향이 많습니다. 이념이나 가치, 정책이 부족해요. 따라서 공당이 아니라 사당적입니다. 정책 부재라는 것은 곧 국민 부재의 정치라는 겁니다. 민생에는 관심이 적고,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는 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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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정치 문제로 이어지자 박 이사장의 목소리는 다소 톤이 높아졌다. 한때 국회의원이었던 박 이사장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에도 정책과 전략, 비전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대신 ‘BBK’라는 사적 이슈가 중심이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한국 정치에서 ‘국민’이나 ‘정책’은 실종된 지 오래됐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대중 인기에 영합하고, 무조건 시중의 여론이 하자는 대로만 좇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적인 정치는 시대가 요구하는 선진화를 위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며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식 실패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보여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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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위기 이후 세계화에 걸맞는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습니다.
새로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을 어떻게 짜야 하나요?
“세계화는 자기 수정을 하면서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모습은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겁니다. 경제 정책에서 개별 국가의 특수성이 보다 강조되고, 금융 규제의 강화, 정부 역할의 제고 등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의 제시가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모델’에서 ‘공동체 자유주의 모델’로의 전환입니다. 소위 박정희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 수출 지향의 개발 체제인 동아시아 발전 모델도 아니고, 선진국 발전 모델인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도 넘어서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이 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나는 중진국 발전 모델인 ‘서울 컨센서스’라고 부릅니다.”
▶ 서울 컨센서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죠.
“정부와 시장, 수출과 내수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합니다. 성장과 복지의 문제, 경제와 문화와의 새로운 관계, 자본 이동에 대한 새로운 정책 등등을 정립하는 것이죠. 즉, 정부와 시장 중 어느 쪽을 좀 더 강화할 것인지, 수출과 내수의 상대적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수출 효과를 어떻게 내수로 연결시킬 것인지 등의 문제에 답해야 합니다. 성장에 치중했을 때 생기는 사회 격차, 환경 파괴의 문제, 직업윤리와 노동 철학 등 정신 자본의 중요성, 단기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 방안의 검토 등도 있어야 합니다.”
▶ 위기 때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한데요.
“일반론으로 얘기한다면 지도자는 국가 비전과 목표, 전략을 확고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고한 방향감을 가지고 앞장서 국민을 이끌고 나가야죠. 중요한 것은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노력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의 생각, 국민들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바꾸는 데까지 이르러야 대한민국의 선진화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낡은 전략, 낡은 사상, 낡은 문화를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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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련된 질문이 이어지자
“8개월 동안 외국에 나가 있어 한국 신문을 못 봤다”며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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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얘기해 오신 새로운 보수, 새로운 진보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요?
“새로운 보수는 ‘개혁적 보수’를 의미합니다. 자유주의, 시장주의, 법치주의, 세계주의라는 보수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이를 솔선수범하려는 보수가 개혁적 보수죠. 그 동안 구 보수는 보수의 가치를 앞장서 실천하려 하지 않고, 오로지 기득권에만 안주하는 반개혁적 모습이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경우에도 무임승차하려는 경우가 많았지요. 새로운 진보는 ‘정책적 진보’를 말합니다. 평등주의, 정부주의, 법률주의, 민족주의 등 진보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국가 정책 개발에 노력해야 합니다. 그동안 구 진보는 시대착오적인 주체사상이나 마르크스·레닌 사상의 영향을 받아 혁명적 구호나 주장하는 무정책의 좌파에 불과했죠. 우선 시대착오적 극좌 사상을 빨리 버리고 국가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새로운 보수와 진보가 선진화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개혁적 보수와 정책적 진보가 만나서 선진화를 위한 국가 정책을 얘기하면 70% 정도는 서로 공감하는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머지 30%는 건강한 의견 차이죠. 우리나라의 상황에 어느 정책이 보다 바람직한가를 위해 보수와 진보는 서로 경쟁해야 해요. 그렇게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는 모두 선진화 세력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와 헌법을 부정하는 ‘反대한민국 세력’은 선진화 세력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됩니다.”
▶ 한선재단 설립을 새로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는지요?
“한선재단은 선진화를 위해 합리적인 정책 세력을 키우겠다는 의도에서 설립됐어요. 정책을 떠나선 국가 운영을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학자들이 중심이 됐는데, 최근 전직 기업인과 관료들이 참여하면서 ‘이상’과 ‘현실’이 보다 조화를 이루게 됐어요. 과거에 이율곡 선생도 이상과 현실, 이론과 현장을 묶을 수 있는 인재인 ‘경장(更張) 세력’이 부족하다고 역설했죠. 지금도 그렇습니다. 국가 비전과 개혁 정책을 입안하고 현장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책 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래서 비전과 정책 없는 정치만이 난무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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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화제가 실사구시형 인재 문제에 이르자 갑자기 “잠깐 기다려 달라”며 서재로 갔다. 그가 들고 온 것은 저서인 <법경제학>. 조용히 서문을 읽었다. “학문은 현실 문제에 해답을 제시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학문이란 본래 인간사회의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실천성이 있어야 한다.” 그가 어떤 관(觀)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서문을 통해서, 또 서문을 읽어 내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종교적 실천 없는 종교적 깨달음이 공허하듯이 사회적 실천 없는 진리의 추구는 맹목인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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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근무하시면서 교육 개혁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교육 개혁 방안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교육 개혁의 방향은 전교조를 제외하곤 큰 틀에서 이미 국민적 합의가 있다고 봅니다. 공동체를 소중히 하는 자유주의적 교육 개혁이 답이죠. 개인의 창의와 선택, 교육의 질을 위한 경쟁 등을 통한 세계적 수준의 교육의 달성이 자유주의적 개혁의 방향입니다. 자유주의적 개혁이 먼저 오고, 취약 층에 대한 교육 기회의 제공,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과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등이 공동체주의적 보완 정책입니다. 문제는 정부의 개혁 추진 의지와 능력입니다. 이 부분이 쉽지 않아요. 이익집단이 많고 기득권의 벽이 높습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 교육 개혁안을 마련하면서 교과목 하나를 넣고 빼는 게 이렇게 어렵구나 하고 실감한 적이 있어요. 결론적으로 성공 여부는 대통령의 소신과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들을 압도할 수 있는 확고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관련 정책도 바뀌어 일관성을 잃은 것도 큰 문제 아닙니까?
“교육 정책이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정책 내용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집행이 잘못 됐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죠. 대통령이 주도하고 여야가 합의해 10년 이상 가는 교육개혁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수립된 정책의 기본 방향과 원칙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어야 합니다.”
▶ 수도권 규제 완화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현 정부의 지방 정책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명박 정부의 지방 정책요? 잘 모르겠는데, 한번 설명해 주세요.(웃음) 지역 발전과 관련해 ‘균형 발전’ 논리는 잘못된 겁니다. 결국 ‘균형’도 못 잡고, ‘발전’도 놓칩니다. ‘발전 균형’이 돼야 합니다. 각 지방의 자발적 발전이 목표가 돼야 한다는 얘기죠. 지방의 자발적 발전을 위해서는 철저한 분권화, 즉 돈과 권력이 대폭 지방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방정부가 사실상 경제적 연방제 수준의 독자성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과 같이 돈과 권력이 중앙에 집중된 구조를 이대로 두고 공공기관 몇 개 지방에 옮기는 식으로는 지방 발전은 요원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소위 행정중심복합도시는 빨리 바꾸어야 할 크게 잘못된 정책이지요.”
▶ 일본이나 중국도 지방분권형 구조를 계획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일본은 지방을 12개의 지역 국가로 나누는 도주제 도입을 결정했습니다. 10년 안에 12개의 강소국가로 키워 이들 간의 경쟁을 통해 일본을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죠. 중국도 미국처럼 연방제가 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겁니다. 우리나라도 인구 규모가 500만에서 1500만 명 정도 되는 4~6개의 경제적으로 자립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지방정부로 나눠야 서울이나 지방이나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행정 단위를 나누기만 해선 안 되고, 모든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합니다. 지방은 지방대로 발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서울은 서울대로 ‘해방’해야지요. 앞으로 서울은 지방이 아닌 해외에서 자본과 인재들이 몰려와서 발전하는 도시가 돼야 합니다.”
▶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계, 기업,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모두가 위기 극복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정부가 이미 추락하고 있는 성장 동력과 약화되고 있는 경제 체질을 어떻게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인가가 문제죠. 700여 개의 거대 다국적 기업이 전 세계 R&D 투자의 3분의 2를 차지합니다. 어떻게 이들을 한국에 올 수 있도록 할 것인가부터 고민해야죠. 이들을 유치하기 위해선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양질의 인재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 경쟁력의 문제죠. 둘째는 그들이 기업하고 싶고, 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공공 서비스, 문화의 다양성 등 도시 경쟁력을 제고시켜야 합니다. 기업이나 개인은 어디에 투자해야 향후 시장 가치와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깊이 고심해야 합니다. 역시 기술 개발과 교육과 훈련에 투자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 이코노미플러스 5월호 [Special interview]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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