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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터뷰] 2009 한국의 모색-좌우를 뛰어넘다
 
2009-04-29 13:22:15

 

 


"보수, 공동체 위한 투자와 희생 꺼려 선거 의식해 포퓰리즘 유혹 빠지기도"


보수, 기득권에만 안주 시대가 원하는 개혁나서야
반(反)체제만 외치는 진보는 퇴보이고 역주행일 뿐


"한국의 보수는 자기희생을 꺼리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무임승차하려고 한다. 보수적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국정 개혁과 국가 개조에 나서야 한다."

박세일(61) 서울대 교수(법경제학)는 2시간의 인터뷰 내내 한국 보수의 이기주의와 개혁 의지 부족을 비판했다. 그는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보수일수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아래서 많은 이익을 누리면서도 체제 개선과 건강을 위한 노력과 투자에는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중도보수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이끌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2개월이 지났다. 선진화를 추구해온 보수로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명박 정부는 선거에 올인하느라, 집권 후에 대한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특히 시대 흐름의 변화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것 아닌가 싶다. 현 정부는 산업화 시대의 보수와 선진화 시대의 보수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다. 한국의 보수는 선진화 시대에 맞는 '개혁적 보수'로 태어나야 한다."

―한국의 보수가 개혁적이지 않다는 뜻인가.

"한국의 보수는 현실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이 많고, 시대가 원하는 변화와 개혁에 앞장서지 않았다. 또 보수는 자기가 주장하는 보수적 가치에 좀 더 철저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족통일이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확신을 갖고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

―보수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이후 자유민주주의의 다음 과제인 자유화에 대한 적극적 비전과 전략이 없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생명·재산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치주의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약하다. 자유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 포퓰리즘과 선동정치다. 보수에도 포퓰리즘의 유혹이 있다."

―포퓰리즘은 보통 좌파의 전유물로 생각하지 않는가.

"보수적 가치와 원칙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지 않고, 표를 의식해서 보수의 가치와 어긋나는 정책을 수용하는 것이 보수 포퓰리즘이다. 수도 이전 문제가 대표적이었다. 국민에게 고통과 국가적 낭비를 주는 정책이기 때문에 보수가 빨리 고쳐야 한다."(박 교수는 한나라당 의원으로 17대 국회에 진출했으나, 수도 이전 문제에 반대하면서 사퇴했다.)

―한국의 보수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보수는 민주화에 기여했다. 건국 후의 혼란과 6·25의 전란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체제를 지켜냈고, 민주화의 발판인 산업화를 이뤄냈다. 1960~1970년대 민주화를 주도한 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 보수다. 1980년대 이후 민주화 세력 가운데 인민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그룹과는 다르다. 보수와 진보는 1987년 이후에 분화했다. 인민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진보는 반(反)체제의 길을 걸었고, 보수는 체제 내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심화시키려고 노력했다. 386 운동권 세력이 과거의 민주화 세력을 존경하지 않고, 산업화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 역사를 부정한 것은 잘못이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작년과 올해 보수와 진보의 소통을 위한 토론회를 두 차례 진행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는가.

"한국의 보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초하여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적 보수'는 많은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민족통일 등 보수적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고 한국 사회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철학적 보수'가 적다. 그리고 진보는 반(反)체제적 진보는 많은데 체제 내의 진보, 합리적 정책 대안을 내놓는 정책적 진보가 적다. 보수는 자유·시장·법치(권력 견제)·세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진보는 본래 평등·정부·법률(약자 보호)·민족을 중요한 가치로 본다. 보수와 진보 모두 체제 안에서 선진화와 통일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한국의 사회통합 수준이 동유럽이나 남미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한국의 사회통합이 이렇게 미진한 데 지식인의 책임은 없을까.

"진보가 편 가르기를 많이 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주류인 보수가 책임을 져야 한다. 올바른 보수는 본래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지지한다. 그런데 우리 보수는 그간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약했다. 보수가 자기 이익에만 몰두하고, 보수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소홀했던 것이다. '이익 보수'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끌어안는 '가치보수'가 되어야 한다."

―작년 촛불집회를 통해 일부 좌파 세력은 거리에서 정권을 끌어내리려고 시도했다.

"진보는 빨리 반(反)체제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과 원리를 존중하는 진보가 되어야 한다. 선진국에 자기 역사와 헌법을 공격하는 진보는 없다. 나라를 사랑하는 진보라면 체제 내에서 진보적 가치 실현을 위해 합리적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불복(不服)하고 반(反)체제적 구호를 외치는 것은 더 이상 진보가 아니라 퇴보이고 역(逆)주행이다."

박 교수는 "북한의 하드랜딩(급격한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보수가 통일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라고 우려했다. 보수는 통일 비용을 걱정하면서 통일에 소극적이고, 진보는 진보대로 평화를 앞세우면서 통일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적극적인 남북통합과 민족통합 전략을 세워야 한다. 주변 4강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통일 방안을 갖고 남한 주도로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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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일 교수는…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KDI 연구위원과 서울대 법대 교수를 거쳐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 정책기획수석과 사회복지 수석을 지냈다. 2006년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설립, 이사장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전략》 《공동체 자유주의》 등의 저서가 있다.


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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