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의 진짜 문제는 국민들의 노후
최근 주가가 오르고 수출이 늘자 경기침체의 위기를 넘긴 듯한 들뜬 분위기다. 그러나 실업자와 구직 단념자가 이미 110만 명을 넘어섰다. 여기에다 현재 계획 중인 공기업의 구조조정과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감원이 시작되면 또 다른 실업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노동시장이 이렇게 위축되면서 적자 가계도 늘어나고 있다. 가계부채는 688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서민경제가 계속 위축되면 한 푼 두 푼 모은 저축을 생활자금으로 사용하게 되고, 결국 노후에 쓸 자산은 고갈된다. 그렇게 되면 고령자들은 사실상 대표적인 빈곤층이 될 것이다. 이들은 기초연금액을 인상해 달라고 연일 시위를 할 것이고, 연금액을 인상해 주겠다는 대통령 후보는 노인 유권자들의 몰표를 받을지도 모른다. 연금이 대통령을 바꾼 사례를 우리는 DJ를 당선시킨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경험했다. 또 노인층 부양을 위한 세금 부담을 견디지 못한 젊은 층의 세금 이민도 늘 수 있다. 이는 가장 기본적 사회안전망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를 막으려면 정부가 사교육비 지출을 강제로 막고, 문화여가비를 줄이도록 해서라도 노후저축을 늘리도록 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여의치가 않은 사안이다. 또 부동산 거품의 붕괴는 더 이상 부동산이 노후를 위한 안전한 저축수단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결국 노후 안정을 위해서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인 ‘연금’이 가장 좋은 대안이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은 고령자들을 부양하기 위한 후세들의 사회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생애기간 동안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최근 가구소득이 감소한 반면 물가 상승 등으로 지출이 늘면서 퇴직금을 생활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중간정산하는 근로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저축성 상품의 해약도 늘어서 국민의 노후 자산이 고갈되고 있다. 국민의 노후 안정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기다.
우선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퇴직금 제도는 근로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자산 형성 제도다. 그러나 불황이 길어지면서 많은 근로자가 중간정산한 퇴직금을 생활비로 사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퇴직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간정산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이는 근로자들을 노후 빈곤으로 몰아가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퇴직금 중간정산은 1997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때 허용됐다. 근로자들의 노후를 생각한다면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중간정산을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의 개정안을 국회가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비정규직들에게도 법정퇴직금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늘어난 비정규직들이 최근 대거 퇴출되고 있다. 2년 고용 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이들의 노후 불안은 정규직 근로자들보다 더 심각하다.
저소득 근로자나 자영업자의 개인퇴직계좌(IRA)에 보험료의 일정액을 정부가 보전해 주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일반 근로자들은 개인연금과 같은 노후저축을 하면 소득공제를 비롯한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반면 저소득 근로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은 소득이 너무 낮거나 소득신고를 안 해서 연금저축에 대한 세제 혜택이 거의 없다. 정부가 일정액을 보전해주면 저소득층의 노후 소득을 보장해줄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선 ‘고령 사회’가 바로 우리 코앞에 있다. 불경기가 지속되면 될수록 국민의 노후 생계 보장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고령자들이 돈이 없어 자포자기하면 우리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불경기일수록 노후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요인들을 가려내서 신속히 억제하고, 근로자들의 연금저축을 장려해야 한다. 그것이 불경기 이후 닥칠 문제를 사전에 치료하는 길이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경제학
♤ 이 글은 2009년 4월 23일자 중앙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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