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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근] 盧 전 대통령, 헌법 앞에 바로서라
 
2009-04-21 17:02:26

 

盧 전 대통령, 헌법 앞에 바로서라 
 
 
 
 
 
한국의 단임 대통령제는 제도가 아니라 대통령 때문에 실패한 정부 형태가 됐다. 이미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대통령제는 정부와 국가를 국민으로부터 떼어 놓게 하는 ‘헌정의 계륵’이 돼 지난 10년, 포퓰리즘적 군중의 발호와 그로 인한 한국 법치주의의 후퇴 및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가져오게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런 헌정사를 가슴 속에 넣고 크게 숨쉬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듣던 그때를 생각해야 한다. 당시의 노무현은 의원 선거에 수차 낙선하고도 선거제도와 정당 그리고 의회라는 제도에 정면으로 응전했다. 그렇게 현실에 도전하던 1990년대 말, 필자는 경실련 시민입법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그를 시민입법학교의 특별강사로 초빙했고, 그때 본 그는 어쨌든 당당하고 겸손했다.

그러던 그가 국회의원도 건너뛰고 수행한 대통령직을 새삼 구차스럽게 하고 있다. 박연차 회장의 ‘600만달러+3억원+알파’ 뇌물 수수 의혹의 중심에서 벗어나려고만 해서일까, 한 사람의 변호사로서 흥정만 가까이 두고 있는 모습이 크다. 그의 말대로 실체적 진실은 검찰의 발표와 다를 수 있다. 또한 누구든지, 비록 그가 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무죄 추정권을 가진다. 당연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다. 하지만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최근 발표는 그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검찰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15억원 안팎의 금품을 보관하던 지인 명의의 차명계좌에 2006년 8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원을 양도성예금증서(CD) 형태로 보관중이던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이는 권양숙 여사에게 3억원을 건넸다는 정 전 비서관의 진술, 이 돈을 건네받아 채무변제에 사용했다는 권 여사의 주장, 나아가 권 여사의 100만달러 차입 및 빚 변제 진술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말한 몇 가지 사실들 모두를 거짓으로 판정케 하는 것이다.

그렇게 판명된다면, 그런 진술에 영향 받아 정 전 비서관의 영장 청구를 기각한 법원에 대해서는 검찰의 말대로 미국에서 인정되는 이른바 사법방해죄에 해당하게 된다. 미국 시민이 아직도 용서하지 않고 있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까지 받은 것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도청보다는 이를 거짓으로 감춰 법원을 속이고자 했던 사법방해 행위 때문이었다.

필자가 헌법학자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의 대통령제가 공적 진실 위에서 강건해지는 것이다. 거짓은 제도를 무너뜨린다. 그래서 차라리 검찰이 틀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래서인데 노 전 대통령은 어려운 말 쓰지 말고 명확하고 쉬운 언어로 국민이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한다. 그래야 최소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자긍심을 유지할 수 있다.

대통령 탄핵기각 결정이 있었던 지난 2004년을 기억하는가. 그때 헌법재판소는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에 위배한 때 그 직에서 파면하는 제도인 탄핵의 요건을 설명하면서 그 ‘직무집행’에는 공식만찬도 포함된다 하여 그 범위를 상당히 넓게 보았다. 말이 공식만찬이지 사실상 저녁 식사 하는 것도 직무집행에 포함된다 하는 이 광범위한 대통령의 직무행위의 포괄성은 뇌물수수의 구성요건인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도 원용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 자신을 ‘모진 놈’이라 말하면서 세력을 결집하는 데 애쓰지 말고 ‘바보 노무현’이 그랬듯이 오로지 헌법을 바라보면서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그때 그가 현직에 있을 때 헌법을 ‘그놈’이라 말하여 국가의 품격을 떨어뜨린 그 짐도 덜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4월 21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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