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혁명' 두려워할 것 없다
'오바마 혁명!'
일주일 후 취임하는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오바마(Obama)를 바라보는 세계의 눈길이다. 모두가 그를 지켜보는 것은 미국 233년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 대통령이라거나 빈민지역 운동가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무자비하게 난타당하는 미국 경제를 전통적 시장경제 방식으론 구해낼 수 없기에 '무언가 혁명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주에 열릴 '오바마 블랙박스'를 미리 한번 들추어보자.
우선 폴 크루그먼(Krugman) 교수가 지적했듯이 가장 큰 변화는 시장 만능주의에서 적정 수준 정부 역할을 옹호하는 실용적 개입주의로의 선회일 것이다. 이는 경제를 나락에 빠뜨리고 추악한 돈놀음을 하는 월가(街)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에서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 CEO의 고액 연봉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는데 이는 금융위기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는 재정적자를 확대하더라도 정부가 앞장서서 500만 개 일자리 창출과 서민층 보호를 위한 그린 뉴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위기 탈출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백악관의 몸부림이 혹시 신보호주의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공화당의 자유무역과 달리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공정무역(fair trade)'을 주장한다. 즉, 미국에 대해 막대한 흑자를 내는 한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의 각종 '불공정 무역행위'를 눈감아 주지 않고 시장 개방을 위한 채찍을 휘두르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는 대선 기간 중 자동차 교역불균형을 이유로 한미 FTA에 따가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편, 지난 10년간의 냉각기를 거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겨우 제자리 매김을 하는 한미 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한미 FTA 비준은 물 건너가고 다시 과거의 냉각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한미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한숨이다. 반면 은근히 기대를 거는 사람들도 있다.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원하는 진보 성향의 오바마 대통령이 들어서면 다시 북한에 햇볕을 쪼일 거라는 것이다.
둘 다 헛짚은 것 같다. 미국에 '대통령의 자유주의, 의회의 보호주의'란 말이 있다. 선거기간 중 아무리 보호주의적 색채를 띠는 민주당 대선 후보라도 일단 백악관에 들어가면 자유주의로 돌아선다는 것이다. 이의 좋은 예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반대하다가 막상 취임 후 의회 비준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민주당의 클린턴(Clinton) 대통령이다. 미국이 한미 FTA를 체결한 속사정은 거대한 중화 경제권을 형성해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거에서 오바마를 지지한 게텔핑거 전미자동차노조(UAW) 회장은 멀어지고, 한국과의 FTA 비준 거부가 가져올 국제정치적 타격을 강조하는 백악관 안보 전문가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겹겹이 둘러쌀 것이다.
오바마식 정부개입주의를 우리가 섣불리 속단해서 규제완화를 늦추고 큰 정부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단지 우리도 미국과 같이 방만한 금융부분에 대한 적절한 통제는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로 북한을 압박했다면, '없는 자'에 관심이 큰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인권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헐벗은 북한의 실상이 국제사회에 알려진다면 이는 평양에 북핵보다도 더 타격을 줄지도 모른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다고 해서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미국이 혁명적으로 변하지도 않고 한미 관계에 찬바람이 돌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변화하는 미국에 보조를 맞추어 같이 변하며, 세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G20 공동의장국으로서 미국과 국제공조를 공고히 하면서 한미 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1월 13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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