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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정치권의 심기일전을 촉구한다
 
2009-04-09 14:08:34

 

정치권의 심기일전을 촉구한다

국회는 국민의 자화상이다. 국민의 자유의지에 의해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가 아닌가. 그러기에 허구한 날 싸움판으로 날이 새는 국회의 파행을 남의 일처럼 규탄만 할 게 아니라 정치인과 국민이 함께 자성하고 고민하면서 한국 정치의 활로를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 갇혀 과거에 집착하는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날에 뿌리내렸던 아집, 원한, 섭섭함, 고정관념, 경우에 따라서는 각자의 소신까지도 과감히 털어버릴 수 있는 담대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뒤늦게 민주화된 국가들 가운데 근래에 돋보이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의 용기 있는 자세는 모범적인 사례다. 노동운동 지도자로 출발한 그는 과거에 좇았던 이념을 버리고 실용, 즉 저소득층을 포함한 전 국민의 복지 향상에 주력함으로써 국가 발전에 대한 국민적 자신감을 진작하고, 정치와 경제가 함께 굴러가는 상승 동력을 만들어냈다. ‘누구를 상대로 싸울 것이냐’보다 ‘누구와 협력하여 함께 성공을 이룰 수 있는가’에 정치적 초점을 맞춘 결과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역사적 숙제들, 특히 북한과 미국에 대한 흐트러진 국민의 인식을 어떻게 광범위한 합의로 이끌 수 있느냐는 정치적 과제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과거사의 대결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근래 한국 정치의 특징이라면 이러한 숙제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조율과 합의로 비교적 앞서가는 데 비해 정치권은 그에 순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저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 통합을 이끄는 순기능보다는 이에 걸림돌이 되고 분열을 조장하는 역기능에 기여하고 있다는 진단에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렇듯 상당한 수준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우리 국민의 북한과 미국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오늘의 한국사회는 60여 년간의 남북 분단에서 초래된 ‘상황의 이중성’에 대해 이미 높은 수준의 이해를 갖고 있다. 상황에 대한 적응도 매우 빠른 편이다. 남북은 각기 국가체제의 정체성과 안보를 둘러싼 고도의 대결 구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편 민족의 통일과 7000만 동포 모두의 복지를 위해서는 협력해 갈 수밖에 없다는 상황의 이중성을 많은 국민은 이해하고 있다. 남북한의 경제적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는 것, 북한은 자유·인권·개방 등 규범적 차원에서도 매우 취약한 지역이라는 것, 반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통한 북한의 군사적·정치적 공세는 한반도 평화와 한국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국민의 대다수가 특정한 이념과 관계없는 객관적 사실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혼란과 분열의 촉진제가 될 수 있는 태도, 예컨대 내가 원하는 통일을 위해서는 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북한 체제의 붕괴를 앞당겨야만 한다든가 자유, 인권, 반독재 같은 기본가치를 한반도에선 접어둔 채 무작정 북의 지도부와 손을 잡아야 된다는 극단적인 입장은 이쯤에서 확고히 정리해야 한다.

‘친미’ ‘반미’를 놓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권의 구시대적 행태에도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 국민은 한국과 미국의 오랜 동맹관계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미국은 우리의 안보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우방이며 200만이 넘는 동포가 살고 있는 곳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냉전이 끝난 지 20년,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시대도 막을 내려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많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처럼 한국도 미국과의 건전한 동반자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대착오적인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민족주의라는 이념으로 포장해 대미관계를 국민 분열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구시대적인 악습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다가오는 4월에는 다시 국회가 열린다. 정치권이 심기일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때 국민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연일 줄을 잇는 사건들에 흔들리기보다는 국민의 상식에 순응하는 생산적 국회 운영으로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주기 바란다.


 

♤ 이 글은 2009년 3월 30일자 동아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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