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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정치 복원 위해 헌법문화 키우자
 
2009-04-06 09:47:17

 

정치 복원 위해 헌법문화 키우자


지금 온 국민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론 경제위기의 극복이다. 그러나 시급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정치 파탄의 치유가 우선돼야겠다.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한 정책, 전략, 집행 방법에 대한 국가적 선택은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이미 모든 국가는 생존과 적응의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 경쟁에서 승자로 살아남기 위해 유능한 리더십의 확보 및 국민적 합의 도출을 통한 정치적 임전태세를 정비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우리 정치에 대한, 특히 국회와 정당에 대한 국민의 평가와 감정이 어떠한가에 대해선 새삼스레 말할 여지가 없다. 한마디로 실망과 분노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정치 파탄은 단순히 경제위기 극복만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사리 이룩한 우리의 민주정치 자체에 대한 국민의 회의와 절망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매우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어찌하여 한국 정치는 이 지경까지 도달했는가.

여러 번 지적했듯이 우리는 민주화에 성공하고도 그 이후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한 실패가 자아낸 공백 속에서 권위주의에 맞섰던 정치투쟁만이 체질화된 관행으로 되풀이되고 있을 뿐 민주정치는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렇듯 암울한 상황을 돌파해 민주정치의 제도화를 궤도에 올리려면 우선적으로 여야 및 보혁의 대결구도 속에서 서로를 탓하는 것으로 일관해 온 지난날의 악습을 과감히 털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민주정치의 정상적인 발전을 희구하고 있음을 깨닫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국의 민주정치를 새로이 출발시키기 위한 국민적 공론(公論)의 장(場)을 마련해야겠다. 그러기에 우리는 국회에서 하루속히, 이르면 4월 국회에서부터라도 본격적인 헌법 논의가 시작되기를 거듭 촉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는 헌법은 있었지만 ‘헌법문화’는 없었다. 국민 대다수가 합의한 대한민국의 기본 가치와 목표, 그리고 국가 운영의 기본 절차와 규칙이 국민의 의식과 생활 속에서 충분히 체질화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헌법문화가 성숙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대통령, 국회, 정당, 사회 및 시민단체, 심지어는 헌법재판소까지도 헌법에 충실치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문화의 부재는 민주정치의 제도화를 원천적으로 어렵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국회가 마련하는 공론의 장에서는 다시 1948년 제헌, 87년 개헌 때의 진지한 자세로 돌아가 지금의 첨예한 쟁점보다는 국가 경영의 원칙을 앞세워 모두가 함께 고민하며 최선의 해답을 위해 지혜를 모아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 국회에서 보여주는 심각한 결투사태는 결국 다수결의 원칙과 여야 합의의 원칙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가에 대한 절차적 쟁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결의 구도를 뛰어넘어 구속력 있는 법적 합의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다수에 의한 통치와 소수의 권리 보장이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만 한다. 소수당과의 합의가 다수결의 원칙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곧 소수의 거부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대한 헌법적 선택으로 과연 그러한 선택은 안정된 민주정치에 기여하는지, 또 이에 수반하는 대가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시장의 자유와 국가 규제의 관계를 정의한 경제 조항, 시민적 자유의 확대와 국가 권력에 의한 제한 범위와 정당성을 규정한 기본권 조항, 양원제의 도입이나 통일헌법의 준비와도 연관될 수 있는 지방분권에 관한 조항 등을 둘러싼 헌법적 차원에서의 공론이 구체적 이해관계가 뒤섞인 쟁점 법안의 합리적인 심의와 타협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국회가 주도하는 헌법 논의는 그 동안 수라장이 됐던 입법 과정의 개선 및 정치권에 대한 신뢰 회복과 더불어 국민들의 정치 의식, 특히 헌법문화의 창달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3월 9일자 중앙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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