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학력평가 ‘거부’는 부당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가 초등학교 4학년에서부터 중학교 3학년에 이르는 학생 대상의 오는 31일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가도록 유도하는 가정 통신문 발송과 함께 통신문 발송 교사의 이름과 소속 학교를 공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학력평가는 교육의 핵심 과정’이며, 이는 학교 현장의 성과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생산하는 유일한 도구다. 학업성취도의 실상을 알아야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거부’는 부당하며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학교의 학업성취도보다 훨씬 성과 측정이 곤란한 정부와 공기업 등 공공기관이 모두 성과평가를 받고 문제점을 진단해서,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마당에 학교의 진단평가를 통해 학업성취 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정부 당국의 당연한 책무라 하겠다. 진단평가 결과 사후적으로 평가 성적이 나쁜 학교에 대해서는 정부와 교육청 차원의 집중적인 지원과 관심이 따라야 한다.
학생들의 학업성적 수준을 파악, 성취 목표에 미달하는 학생들에 대한 개별지도를 통해 학력 향상을 유도하고, 평가 결과를 진로지도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교육정보 공개를 통해 학교교육의 책무성을 제고하고, 교육 행정의 효율성·투명성을 높여 교육의 질적 향상에 이바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으며, 특히 지역간·학교간 교육 격차를 해소해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 수준을 보장하고 문화적 결손을 보완할 수 있다. 진단평가가 학생들을 서열화하거나 또 다른 시험 부담으로 작용해 사교육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으나 학생과 학부모의 알 권리를 넘어설 수는 없다.
민주당 후보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수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업성취도를 올린 교사들에게 성과급을 지불하는 것이 교실에서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에 반대해온 교원노조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공교육에 대한 강한 개혁 의지를 밝힌 것이다.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 안 덩컨은 시카고 교육감 시절, 교원노조와 학부모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원 학생이 적고 학업 성취도가 낮은 공립학교 61곳을 폐쇄하고 대신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제공하는 75곳의 새 학교를 세웠다. 우수한 교사와 학교에 대한 지원 강화 정책이 교육 성과를 보장하면서 결국 학부모와 학생의 만족도 제고, 나아가 국가경쟁력 제고로도 이어진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교육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계 미셸 리 교육감도 학교·교사의 자질 강화, 교육 여건 개선, 학교와 학부모의 소통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해 타임스 등 세계 주요 언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학교와 교사, 학부모가 노력하면 학생의 성적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달라진다며 학업 성적이 좋은 학교에 대해선 학사 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반면 나쁜 학교에 대해선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교육과정상의 목표 및 시대·사회적인 능력이 반영된 평가 도구를 개발·적용하여 기초학력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초학력의 기준에 대한 전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을 위한 홍보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 수준의 기초학력평가를 통해 학교 간의 경쟁과 단위학교 내에서의 상호 협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학생평가 체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학생 개인에 대한 영역별 성취 수준 등 구체적인 정보를 학교와 학생에게 제공하여 평가 결과에 근거한 교수·학습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3월 24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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