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파동과 사법 독립
진상조사 이어 윤리위 결정 주목
사법 독립에 대한 각성 계기 되길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신영철 대법관의 서울중앙지법원장 재직 시 촛불재판 담당 판사에 대한 반복적인 이메일 등으로 사법행정상의 권고·지시 등을 행한 과정과 내용이 재판 간여로 볼 소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급 법원은 하급 법원에 사법행정상 이루어지는 지시 내지 감독은 할 수 있으나 법관의 재판권 행사에 기능적으로 간여하는 것은 금지된다 함은 이미 헌법 교과서에 적시돼 있다. 법관의 독립한 재판권은 대법원장이나 각급 법원장 기타 상급 법관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진상조사단의 결론은 그만큼 상급 법원 및 법관으로부터의 자유는 사법의 물적 독립의 핵심이 되는 당위임을 재확인한 것이라 하겠다.
사법은 권력을 지향하지 않는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법을 목적으로 법을 확인하고 법질서의 정당성을 유지하는 국가작용이다. 사법부가 독립성과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법은 자의이건 타의에 의해서이건 정국의 한복판에서 그때그때마다 가장 큰 정치적인 파장의 획을 긋곤 했다.
유신헌정기의 길목에 막 들어서려 한 1971년 6월 당시 정권의 관심사였던 국가배상법의 군인 등에 대한 이중배상의 금지 규정에 대해 대법원이 위헌결정을 내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는 정권의 정당성에 물음표를 긋는다 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어진 시국사건 관련 현직 지방법원 부장판사 구속은 제1차 사법파동을 나오게 한다. 사법은 이렇게 자신의 문제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가히 ‘사법파동’이라 할 만큼 강하게 항의해 왔다. 하지만 사법의 독립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법의 확인과 법질서 유지를 위해서 사법파동으로 일어선 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확신을 주기 어렵다 할 만큼 희소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견지에서 국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던 촛불집회 사건 관련 재판담당 법관에게 현행법에 따라 결론을 내주기를 당부한다는 취지의 메일, 재판 진행을 독촉하는 메일을 반복적으로 보낸 것, 보석을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발언 등이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진상조사단의 결론이 법원 식구들에게는 물론 국민들에게도 공감을 주기 위해서는 이어서 소집될 윤리위원회에서 국민을 위한 법질서 유지라는 차원에서 다시 한 번 검증돼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법관의 양형 선택과 판단 등의 결정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거나 극히 제한하는 것은 법관의 독립한 재판권에 반한다는 결정을 해왔다. 그런 견지에서 법원장의 법관에 대한 이메일의 반복적 발송 등이 부적절의 차원을 넘어서 법관의 양형 재량의 독립적 권한을 지나치게 제한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돼야 한다.
사법의 헌정사적 흐름을 보면 정권마다 사법파동이라 할 만큼 사법의 독립성을 확인한 사안들이 있었다. 문제는 재판의 독립이 무엇인가이다. 이번 사건이 사법을 기능적으로 보아 그를 구성하는 법조인, 변호사, 법학교육 등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사법의 이해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국민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각성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는 이 시대 사법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사법을 법관들의 틀 안에 가두고 그 독립성을 강변하는 것은 사법 독단의 다른 말이 될 수도 있다. 또 국회 등 정치권이 이를 권력 쟁탈의 장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오히려 사법의 당파성과 이념성을 부채질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점들을 두루 고려하면서 이번 신 대법관의 이메일 파동이 사법의 독립에 대한 각성과 자성의 진정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2009년 3월 17일자 세계일보 [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번호 |
제목 |
날짜 |
---|---|---|
585 | [안세영] '오바마 혁명' 두려워할 것 없다 | 09-04-09 |
584 | [강천석] 고양이가 쥐약 먹고 쥐덫에 갇혀서야 | 09-04-09 |
583 | [이홍구] 정치권의 심기일전을 촉구한다 | 09-04-09 |
582 | [김형준] 변칙과 기형의 ‘홍길동 선거’ | 09-04-09 |
581 | [김영봉] 인권위(人權委)에 '인권(人權)'이 있는가? | 09-04-09 |
580 | [한겨레21 인터뷰] 수출 지향·신자유주의 넘어설 패러다임 필요 | 09-04-06 |
579 | [이인호] 불신의 옹벽을 깨려면 | 09-04-06 |
578 | [이홍구] 정치 복원 위해 헌법문화 키우자 | 09-04-06 |
577 | [남상만] 관광객 눈높이 맞춰야 ‘한국 방문의 해’ 성공 | 09-04-06 |
576 | [전상인] 소음을 줄이고 볼륨을 낮추자 | 09-04-01 |
575 | [중앙일보 인터뷰] 민주화될수록 국가리더십 필요 | 09-03-30 |
574 | [이홍규] 기업 혁신이 희망이다 | 09-03-24 |
573 | [이인호] 불신의 옹벽을 깨려면 | 09-03-24 |
572 | [강경근] 李정부 법치, ‘박연차 수사’에 달렸다 | 09-03-24 |
571 | [박정수] 전교조 학력평가 ‘거부’는 부당하다 | 09-03-24 |
570 | [강경근] 이메일 파동과 사법 독립 | 09-03-18 |
569 | [강연연고] 세계 권력구조의 변화와 국가전략 | 09-03-17 |
568 | [강상호] 선진 의료 문화 체험기 | 09-03-17 |
567 | [조영기] 김현희 사건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 09-03-16 |
566 | [박정수] 오바마 한국 칭찬? | 09-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