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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호] 선진 의료 문화 체험기
 
2009-03-17 09:08:39

 

 


선진 의료 문화 체험기


  몇 해 전 출장차 독일에 갔다가 호텔에서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된 적이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후 밤 10시 쯤 되었을 때, 아래 배가 아파 오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진통제를 계속 복용하다보니 1시간 동안에 8 알을 먹었고, 그래도 통증이 가시지 않아 또 다시 진통제를 복용하려다 덜컥 겁이나 서울에 있던 의사인 아내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전화를 받은 아내는 약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전화를 끊고는 호텔측에 전화를 걸어 투숙중인 남편에게 의사를 보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아내가 전화를 한 후 10분 쯤 지나 앰블런스가 호텔에 도착하였다. 

현관에서 환자를 기다리던 의사와 간호사.

  앰블런스가 도착한 곳은 호텔에서 가까운 병원이었다.   우리나라로 본다면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작은 병원이었는데, 앰블런스가 병원 마당에 도착했을 때 의사와 간호사가 병원 현관에 나와 환자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병원을 갈 때면 진료까지 한 참을 기다리는 것을 예사로 여겼던 터에, 늦은 밤 병원 현관에서 응급환자를 기다리는 의료진을 보면서 통증으로 고통스럽던 순간에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초음파실로 옮겨져 초음파 검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예상된 부위에서 결석을 발견하지 못하자, 의료진은 2차 진료 병원으로 후송 결정을 내렸다.  초음파실에서 다시 앰블런스로 옮겨지는 동안 의사와 간호사가 동행하였고, 앰블런스가 병원 마당을 빠져 나갈 때까지 그들은 병원 현관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2차 진료 병원은 비뇨기과 전문 병원이었다.   연락을 받은 전문의가 대기하고 있었고 정밀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신장아래 요로 부분에서 결석이 발견 되었다.  의사는 한 두 차례 초음파 파괴 시술이 필요하다면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되어 있는지를 물었다.  한 차례 시술 비용이 당시 원화로 500 만원 정도 였는데, 두 차례 시술을 할 경우, 시술비만 1000 만원에 이르는 적지 않은 금액이어서 담당 의사로서는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이송되어 입원 결정이 있던 그 날이 마침 토요일이어서, 시술은 월요일이나 가능했다.  무료하게 병원에서 이틀을 보내려니 여러모로 걱정이 되었다.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하면 시술을 받고 오라고 할 것이 뻔해, 이번에는 친구인 다른 의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결석으로 죽는 일은 없으니 진통제를 먹고 빠른 비행기로 귀국해 시술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시술비만 비교하면 독일 현지에 비해 1/3도 안 되는 비용이었다.

병원비 지불 없이 내려진 퇴원 수속.

  담당 의사를 찾았다.  그리고 일요일인 다음날 퇴원을 해서 귀국하겠다고 하였더니 담당 의사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귀국 비행기에서 응급사태가 발생해 비행기가 정상 항로를 변경해야 할 경우, 병원 측에 책임이 따른 다는 것이었다.  나는 병원의 만류에도 환자인 내가 퇴원을 요청하였으며, 차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환자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확인서를 써 주고 퇴원을 승인 받았다.  결국 입원 다음날인 일요일에 퇴원하게 되었는데, 병원측은 일요일에는 병원비 정산이 안 되니 치료비 내역을 팩스로 보내면 은행계좌로 치료비를 송금해 달라는 것이었다.  필요한 서류 절차를 마치고 늦은 밤 병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짧은 시간 동안에 있었던 모든 사실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외상으로 병원에서 퇴원하다니 그것도 외국에서, 믿기지 않았다.  담당의사가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의사 개인의 배려라기보다는 제도적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설사 치료를 받고 외상으로 퇴원한 환자가 치료비를 송금해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어떤 의사가 그런 상황에서 퇴원 결정을 내려줄 수 있겠는가? 선진 신용사회의 일단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외롭지만 독일에서 남은 인생을 마치렵니다.

  진통제를 주사하기 위해서 간호사가 들어왔다.  한국인 간호사였다.  1960-70년대 독일에 온 간호사였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 방문 기간 중,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만나서 눈물을 흘렸다는 그 간호사들 중 한 명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60을 넘긴 간호사였다.  밤이 늦도록 병실에서 나는 그 간호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간호사는 무척이나 외로웠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하려고 3번이나 고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러나 마지막 방문에서 귀국을 포기했다고 했다.  우선 독일에서 노년을 보낼 경우, 사회보장제도에 의해서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사회복지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로 한국사회는 과도한 경쟁사회로 본인의 경우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외롭지만 독일에서 남은 인생을 마칠 것이라고 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과도한 경쟁, 그 속도감 이젠 바뀌어야 합니다.

  암스텔담에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홍콩을 경유해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였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과도할 정도로 맥주를 마셨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암스텔담에서 홍콩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나는 깊은 상념에 잠겼다.   선진 한국은 어떤 사회일까?   아니 어떤 사회여야 할까?   국민소득 30,000 달라, 40,000 달라를 달성한다고 한국사회가 행복해 질까?  지난 며칠 간 독일 출장에서 경험했던 일련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서두르지 않는 여유, 외국인에게 까지 믿음을 보여주던 신용사회,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  한강의 기적 뒤에 남겨진 유산, 그들 중 일부는 선진사회 진입을 위하여 버려야할 유산도 있지 않을까?  과도한 경쟁, 빨리 빨리 그 속도감 ...........,  이것 저것을 상상하다 잠이 들었다.

  홍콩 공항에서 3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륙 후 20분 쯤 지나 아래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 통증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옆자리 승객이 불편해 할까 봐, 기내 화장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고통과 함께 소변을 보게 되었다.  무언가 화장실 변기통을 때리며 튕 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져 갔다.   마지막 순간에 작은 행운이 나에게 찾아 온 것이었다.   그토록 나를 괴롭혀 오던 결석이 이름 모를 어느 하늘에서 빠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공항에 아내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내에게 기내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지만, 아내는 곧장 나를 병원으로 데려가 x-ray를 찍게 했다.  독일에서 가져온 x-ray 필름을 보면서 의심 부위를 정밀 촬영해 나갔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결석은 이미 고통과 함께 빠져 나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귀국 후 10 여일이 지나 독일에서 치료비 내역이 팩스로 도착했다.  원화로 120 여 만원이었으니, 하루 입원 치료비로 적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송금하였다.  


                                                      2009년  3월 16일    강상호 씀

 

♤ 이 글은 강상호 대표님께서 재단으로 기고해주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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