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의 일원으로서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절명시킨 1987년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테러범 김현희씨가 11일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부산 벡스코 기자회견장에는 북한이 납치한 일본인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씨의 가족도 함께 나왔다. 피랍 후 다구치씨는 김씨에게 일본어와 일본 관습을 가르친 가정교사였다. 김씨는 당시 “KAL기 폭파 사건은 북한의 테러”이며 자신은 “국가안전기획부가 조작한 가짜가 아니라 진범이 바로 나이니 제발 믿어 달라”는 육성 증언을 했다.
김씨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노무현 정부의 국가정보원이 조작설을 인정하도록 자신을 괴롭혔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덧붙였다. 지난해 11월에도 김씨는 편지를 통해 2003년 정부 기관 등의 ‘친북·좌파세력’이 공중파 방송 3사를 동원해 KAL기 폭파 조작설을 퍼뜨리기 위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해 ‘KAL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압했다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육성 증언이 아닐 수 없다.
22년 전의 KAL기 폭파사건은 당시 전 국민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이 충격적인 사건에 대해 뒤늦게 ‘안기부의 자작극’이라는 의혹이 지난 정부 시절 기성을 부렸다. 그러면 왜 자작극이 지난 정부 시절에 기성을 부렸을까. 해답은 바로 ‘KAL기 폭파의 주범 김정일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는 김현희의 거짓 증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안기부의 자작극’을 유포한 행위는 국가의 정체성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종교와 양심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건 조작의 선봉에 선 세력이 친북 이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국가 정보기관까지 침투했다는 방증이다. ‘친북좌파’ 세력이 노린 것은 분명한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인 것처럼 반복해서 사실로 둔갑시키려는 저의 때문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이날 김씨가 피랍 일본인 다구치씨의 가족과 만난 부산 벡스코 면담장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이 보여준 모습은 너무도 판이했다. 일본은 자국민 피랍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납치 문제 해결을 최우선 외교과제로 삼고 모든 역량을 다해 일관되게 노력한다.
이번 면담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모든 외교적 역량을 집중시켜 이번 면담을 성사시켰고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우리는 일본이 일·북 국교정상화 협상장에서도, 북핵 6자회담 자리에서도 북한과 만날 기회만 있으면 납치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주장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미국이 6·25 때 전사한 미군의 유해를 찾기 위해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강의 밤섬 주위를 탐색하는 모습에서 강력한 자국민 보호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죽어서도 조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애국심이 생긴다.
우리는 북한의 납치 만행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다. 6·25 이후 어부 등 499명이 북한에 납치됐다. 정부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납북자는 480여명, 국군포로는 560여명이라고 한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책무다. 그런데 지난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는 때로는 대화를 위해, 또 때로는 북한이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를 금기시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무한책무’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이번 면담에서 일본이 보여준 의지와 노력, 열망과 열의는 이명박 정부가 배워야 할 경계(警戒)이자 교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국군포로·납북자 송환을 ‘무한책임의 과제’라고 한 만큼 그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그 성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2009년 3월 13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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