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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회] 우리 것이 아닌 우리 문화
 
2009-03-12 10:52:23

 

 

우리 것이 아닌 우리 문화
 
 

평소 별 생각없이 지나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몇 가지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사람이 생일을 맞습니다. 생일은 무사히 한 해를 잘 살아왔고 건강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다음 생일을 맞이하길 축원해 주는 거야 인종 국가를 가리지 않고 공통된 의식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일을 축하할 때 부르는 노래에 눈길을 돌려 보십시오. '생일 축하합니다’로 시작하는 노래에서 우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먼 조상 때부터 생일을 축하해 왔을 텐데 어찌 서양에서 들어온 노래가 우리 생일을 독차지하고 있을까요?

결혼식장에 가 봅니다. 신부 입장과 행진에서 연주되는 노래 역시 우리와 거리가 멉니다. 이어지는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은 천편일률적으로 같습니다. 현재의 결혼의식이 비록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도 수천년 동안 결혼식을 치러왔는데 결혼식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우리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을 수 없고, 내용도 사람마다 똑 같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골프장에 갔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골프장은 우리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골프장 안내, 쓰는 말, 경기 중 구호 등 거의 모든 것이 외래어 그대로입니다. 그렇다고 그 골프장을 이용하는 외국인이 많은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용하는 골프장인데 우리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고유문화 속으로 외국 문화가 들어 올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들어온 문화는 고유문화와 융합하면서 그 모습을 바꾸어 정착하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그런데 생일, 결혼 등 생활과 밀접한 문화와 결합하면서 저렇게 원형 그대로 들어올 수 있는 지 의아합니다. 생일에 축가를 부르는 문화가 도입될 수 있어도 그때 부르는 노래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노래를 만들어 즐길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전통 음악 즉 국악을 하는 분들이 생일을 축하하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들은 그때 '와 이리 좋노, 와 이리 좋노, 동지 섣달 꽃 본 듯이 와 이리 좋노’라고 노래 불러 축하해 주더군요. 제겐 그 노래가 생일 축하로 제격이란 느낌이 신선하게 와 닿았습니다.

주례를 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해에 수십만 쌍이 결혼을 해도 모두 똑 같은 혼인 서약과 성혼 선언문이 낭독된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혼인 서약과 성혼 선언문을 다른 내용으로 바꿔 보기도 하고, 신랑 신부에게 서로에게 지켜야 할 약속을 축하객들이 모인 곳에서 하도록 강요(!)하기도 했습니다. 신랑 신부는 괴로웠을지 모르지만 만인 앞에서 약속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기록해 둔다면 평생의 생활지침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 것만 지키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 속으로 외부 문화가 다양하게 들어올 수 있고,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외부 문화가 들어오더라도 어디까지나 우리 것을 중심으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기본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새로운 용어, 새로운 놀이 문화, 새로운 의식 등이 처음 들어올 때 우리의 고유문화나 정서와 융합시키려는 노력을 했더라면 마치 외국 골프장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은 덜 가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한 지붕이 되어 숱한 외래 문물이 매일 밀려들고 있습니다. 밀려온 것이 대대로 내려온 우리 것을 밀어내버리도록 내버려둬서는 곤란하겠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될수록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도 점차 바래질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잃은 민족이 사라지는 것은 역사 속의 진실이고 우리가 그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 이 글은 고영회 대표님께서 재단으로 보내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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