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상화’위한 새 걸음
국가와 헌법을 부인하면 반역자가 된다. 형법상으로는 외국인과 통모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이거나 적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이다. 그럼에도 2000년 이후 한국에서는 이들을 민주화운동자라 칭하여 헌법과 법의 이름으로 상을 내렸다. 대한민국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망각한 자기 부정의 의식과 다름없었다.
그런 망각의 의식을 가능케 한 것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민보상법)이다. 2000년에 제정된 이 법은 당연히 ‘대한민국’의 헌법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 헌정 질서의 확립에 기여하는 운동자를 위한 법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헌법과 헌정 질서를 부인하는 자는 반역자로서 처벌됐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역시 2000년에 제정된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의문사법)도 그러했다. 이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규범이다. 이 법에 따라 의문사로 인정된 자는 위의 민보상법에 의해 보상을 받는다. 그래서 민주화운동의 개념도 민보상법의 개념을 그대로 빌렸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그 헌법을 부인한 자는 절대로 의문사법상의 의문사나 민주화운동을 한 자로는 인정되지 못한다.
그런데 2004년 6월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직속 의문사 진상규명 위원회’는 남파간첩과 빨치산 등의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를 처음에는 ‘진상규명 불능’이라 했다가 재상정, 심의·의결이라는 재의(再議)를 통해 그들을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했다. 당시 의문사위원이었던 필자는 홀로 이에 반대하는 기각 의견을 표하면서 전해온 살벌함을 온 몸으로 감지했었다. 당시 그 자리에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려움과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민보상법에 따라 2000년에 설치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 위원회’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폭력 혁명으로 파괴하려 한 남민전사건, 노동자 무장봉기를 계획한 사로맹사건 등을 민주화운동의 범주에 넣어 대법원이 이적단체라고 한 판결을 무시했다. 그 자리에도 대한민국은 없었다. 그리고 2002년 4월, 1989년 교내 시위 과정에서 납치된 전경을 구출하기 위해 도서관에 진입하던 경찰을 향해 시너와 석유를 붓고 불을 붙여 경찰관 7명을 숨지게 하여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은 부산 동의대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운동자로 인정했다.
경찰 유족들은 이 방화치사의 가해자들에게 명예 보상을 해줌으로써 유족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위원회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건만 헌법재판소는 2005년 10월 결정에서 재판관 5 대 4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이후에도 유족과 보수 성향 단체들은 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고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의 이 길고도 긴 하향곡선의 한국의 법치주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부인이라는 밑바닥까지 가면서 최근의 용산사고와 국회의 폭력사태까지 이르렀다. 법의 이름으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실정법이 자연법에 반하는 악법이라면, 동시에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 자를 의인이라 칭하는 그런 전도된 가치, 그리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국가와 헌법의 존재를 부인하는 실정법 역시 반가치적 반헌법의 악법이다.
이제는 이들 민주화운동자 결정 사건을 대한민국의 눈으로 재심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침 그런 내용을 지닌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밝힌 국회의원이 있다. 권위주의 정권의 청산 작업을 1987년 이후의 1기 헌법재판소가 담당했다면, 그간 훼손된 대한민국의 법치국가적 민주주의 정상화의 첫발은 입법부가 할 것이라는 기대를 주는 의의가 크다.
♤ 이 글은 2009년 2월 28일자 문화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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