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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폭력 사회와 폭력 국회
 
2009-01-28 10:57:27

 

 


설 연휴도 끝나고 한 주일 뒤면 입춘이다. 봄이란 원래 꿈과 희망의 상징인데 세상 돌아가는 형편은 영 딴판이다. 극심한 경제적 고통과 시련을 새삼스레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봄은 또 한 번 ‘폭력의 계절’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얼마 전 용산 철거민 참사의 불씨가 살아 꿈틀거린다. 여기에 2월이면 잠정 휴전을 마친 국회가 이른바 쟁점법안을 둘러싼 입법전쟁 모드로 되돌아간다.

전직 대통령 한 분은 이 두 가지를 한데 엮기 위한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잘사는 사람을 위한 정치는 필요 없다”고 말한 그는 “민주당이 이번 용산 참사의 모멘텀을 타고 2, 3월에 잘 싸우면 4월에 열릴 재·보궐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가원수를 지낸 경력에서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이력에서나 참으로 믿기 어려운 폭언이다. 하지만 결코 실언(失言)은 아닐 것 같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민의의 전당’을 난장판으로 만든 최악(最惡) 최장(最長)의 농성사태 이후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는 소폭이나마 상승했다고 한다. 그러니 현실정치에서 폭력이 통한다는 나름의 자신감이 더 생겼는지 모른다. 폭력국회에 대해 겉으로는 국민적 공분(公憤)이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그것에 대한 성원이 없지 않은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일부 집단의 일시적 양태가 아니라 폭력이 일상화한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토양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나라 곳곳에 만연한 폭력불감증

경찰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5대 범죄 가운데 절반 이상이 폭력이다. 폭력범죄 발생비율이 일본의 13배에 이른다는 몇 년 전 자료도 있다. 많은 경우 이유가 대수롭지도 않다. ‘길을 가로막았다’든가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정도다.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세 가구당 한 집에서 신체적 폭력행위가 발생한다. 아니, 두 집 중 하나라는 것이 2008년 여성부 발표다.

학교는 어떨까. 사제지간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 오고가는 폭행이 증가일로에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막을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대학 캠퍼스라고 별로 나을 것도 없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나 각종 수련회 등에서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폭력적 대면식과 신고식은 거의 매년 꽃다운 인명을 앗아가고 있다. 한편, 작년 말 국가인권위원회가 낸 보고서를 보면 중고교 운동선수 10명 가운데 8명이 지도자나 선배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취업 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27%가 사내(社內)폭력의 피해자다. 천만 다행으로 요즘 군대와 경찰, 교도소 등에서는 폭력이 사라졌다니 사실이기를 바랄 뿐이다. 그 대신 근래에는 가두(街頭)폭력이 급속히 늘었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나름대로 명분을 획득했던 이른바 저항폭력이 언제부턴가 모든 파업이나 시위현장에서 당연한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긴 폭력을 사용한 기율 확립은 물론 가부장적 성폭력 또한 없지 않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는 것을 보면 운동권 자체도 한국적 폭력문화의 예외가 아니라 또 다른 사례일 것이다.

이처럼 사회 도처에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이니 국회야말로 가장 정확한 국민의 대표기관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유권자는 폭력국회로부터 자신의 잠재적 욕망에 대한 일종의 대리만족을 즐기는 듯싶기도 하다. 마치 권투경기나 조폭 영화를 보면서 원초적 본능을 달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폭력국회는 결코 정치권의 책임만이 아니다. 그 대신 그것은 폭력성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근원적인 성찰과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다.

문명화 없는 민주화는 모래城

폭력의 합리적 관리는 근대 문명화의 출발이다. 그리고 문명화 없는 민주화는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르는 모래성에 가깝다. 이런 점에서 온 세상에 부끄러운 것은 폭력국회가 아니라 폭력사회다. 하지만 ‘폭력의 봄’을 목전에 둔 이 시점에서 자조(自嘲)와 자학(自虐)이 능사는 아니다. 혹시나 이 엄청난 사회폭력의 부존 에너지를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반전(反轉) 내지 역전(逆轉)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바로 그게 제대로 된 정치의 몫이고 유능한 지도자의 일이다.

 

♤ 이 글은 2009년 1월 28일자 동아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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