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대에 오른 정부
용산 사태 대처 잘 못하면 향후 공권력 회복 힘들어
용산 철거민 진압사고로 6명이 죽는 참극이 발생했다. 농성자들이 컨테이너 망루를 시너, 화염병 등 인화물질로 가득 채우고 경찰특공대가 이들을 공격한 상황이었으므로 사고는 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먼저 부모와 처자를 두고 간 희생자와 그 가족의 슬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비극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어느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이보다 더한 갈등요소가 무수히 존재하고 이들을 극단투쟁으로 인도하려는 사회파괴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갈등 해결의 규칙을 세우고 이를 엄격히 집행해서 사회 안정과 시민 다수의 보호를 책임질 공권력은 무력하다. 용산사태는 이런 일련의 사회적 취약성이 빚어낸 비극이다. 정부와 국민이 이번 사태를 건강한 한국 사회를 만드는 디딤돌로 삼아야만 향후 이런 야만적 사태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법치주의 국가에서 집단 간 개인 간 분쟁은 사법적 절차에 의거해 해결됨이 원칙이다. 용산사건의 발단은 보상에 불응한 일부 세입자가 극한투쟁으로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한 데에 있다. 그 보상조건에 불복하는 사람들은 사법적 심판을 요구하고, 비록 시간이 걸리고 미흡한 결과가 초래되더라도, 그 규정된 절차에 따를 의무를 가진다. 이런 요구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이 화염병을 들고 나오고, 시민단체가 뛰어들고, 정당 대표가 역성들고 나오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회에는 '지도자 주권(leader's sovereignty)'만 필요하지 법질서는 소용이 없다. 우리 사회에 이들보다 불쌍한 사람이 없겠는가? 결국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들만 손해 보는 세상이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이런 폭력이 오랫동안의 학습효과를 통해서 관행으로 익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현대중공업 파업현장에 가서 "법은 정당할 때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고 한 발언은 너무 유명하다. 두산중공업, 철도 및 화물연대파업, 천성산 사패산의 터널공사 방해와 고속철 역 이름 짓는 것까지 법과 규칙에 의거하기보다 정부가 편들거나 위협에 굴해 정치적 해결이 이뤄졌다. 국가가 국민에게 '극한상황으로 몰고 가야 너희가 얻는다'고 가르친 것이나 다름없다. 당시 여당과 시민사회집단이 이런 속성에 젖어 아직도 소수 약자들을 선동해 이득을 취해보려 한다.
현재의 용산사태도 이렇게 사태가 확산 되는 중이다. 예상대로 이 불행한 참사를 이용해보려는 집단이 작년의 광우병 촛불시위를 재연(再演)하려 시도하고 있다. 참사 직후 세워진 용산 철거민 사망대책위원회에는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진보신당, 민노당, 민노총 및 100여개 단체가 참여한다고 한다. 야당은 이 사고를 '정권의 약자탄압'으로 규정하고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 내정자를 구속하라고 불을 붙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보여주는 대처방법이 중요한 시험대가 된다. 지난 광우병사태의 교훈으로 오늘날 시민들의 지각은 조금 더 성숙해 이런 위험은 많이 축소됐으리라 믿는다. 이런 비용을 치른 뒤에도 정부가 구태의연하게 '시끄러운 것은 잠재우고 보자'는 모습만 보인다면 현 정부하에서 법질서 회복의 기대를 거는 국민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신뢰 잃은 정권이 향후 수많은 갈등사태에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정부는 이미 신임 경찰청장 내정자를 성급한 진압사건 책임을 물어 자진 사퇴시킬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 화염병을 쌓아놓고 시가에 화염병을 던지고 거대한 쇠막대 새총으로 골프공과 유리알을 쏘아대는 것을 몇 개월이고 방치함이 경찰의 옳은 태도인가? 폭동(riot)은 시민안전과 사회보호를 위해 어느 나라에서나 즉각 진압해야 한다. 야당과 좌파단체는 이것을 새 정권하의 정부의 공권력 회복의지를 시험하는 본보기로 삼을 것이다.
♤ 이 글은 2009년 1월 22일자 조선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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