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제도 유린하는 정치권 한심
폭력의원 제재할 소환제 도입을
제18대 국회가 곧 개원 2년차에 들어갈 시기이건만 여전히 식물국회, 불임국회다. 작년에는 촛불시위대에 국민 대표자로서 지켜야 할 의회의 자리를 내주고 성난 민중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의회 권력이 거리의 세력에 굴복한 것이다. 의회 자리를 차지한 이들 민중시위대가 울린 의회주의와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에 야당 의원들은 오히려 동참했었다.
연말·연초 국회 로텐더 홀을 전선으로 삼은 본회의장 점거 농성, 폭력과 무법과 무능은 국회가 아직도 촛불 정국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한 틀로 얘기하자면, 여당은 국가 지도자가 가져야 할 비르투(virtue), 즉 그 의지와 결단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야당 역시 각자가 헌법기관인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으면서 헌법과 의회를 결박했다. 시대의 민심, 즉 포르투나(fortuna)를 살피지 않고 그저 자신들을 추종하는 일부 세력의 대변자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한 것이다.
그런 행태가 범세계적 창피를 받은 줄 몰랐으니 마치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것인 양 주먹을 쥐어 가슴에 올리면서 웃고 사진 찍었을 것이다. 여야가 합의한 문건을 보면 잠시 휴전하자는 얘기지, 법안을 통해 세계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고질이기도 하다. 국민주권적 민주주의는 누리면서도 법치국가적 공동체의 가치는 허물고, 인권을 얘기하면서 그 그릇이 되는 나라에 대해서는 멸시해 왔다.
의원 개개인의 면모를 보면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모여 놓으면 저러니, 참으로 안타깝다. ‘장자(莊子)’에서 이르기를, 큰 도둑이 하는 짓이 작은 도둑과 다른 것은, 큰 도둑은 저울을 만들어 무게를 달려 하면 그 저울째 훔쳐 버리고 인의(仁義)로 백성을 바로잡으려 하면 그 인의도 아울러 훔쳐 버린다고 했다. 저울은 한자로 권형, 즉 저울추 권(權) 저울대 형(衡)이라 쓴다. 권력이라 할 때의 권이 그 글자이다. 권력이라 함은 그래서 저울추와 저울대 같이 치우침이 없고 균형을 이룰 때라야 정당하고 국민을 승복게 한다.
이번에 국회에서는 여당이건 야당이건 국회의장이건 모두 큰 도둑이 되어 나라의 권형과 인의를 훔쳤다. 오늘날 국가의 저울은 헌법이다. 헌정제도는 민주주의가 법치국가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요구한다. 그걸 지키지 않은 이번 제18대 의원들은 임기가 끝난 후 부끄러운 평가를 받겠지만 이런 병폐는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로텐더 홀이건 본회의장이건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성역이 아니다. 거기도 법치주의의 저울로 재어야 할 대한민국의 공간이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그 공간적 상황에 국가의 법치가 자동으로 들어서도록 해야 한다.
국회윤리위원회가 국회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하도록 그 명칭을 윤리사법위원회로 고치고, 외부인사의 비율을 반 수 이상으로 넣으며, 의원의 잘못이 위원회에 자동 상정되어 자격심사가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본회의장을 회의 진행을 할 수 없을 정도의 물리력으로 점거하면 의회 불능 상태로 자동이행돼 국회규칙이 정하는 장소에서 대신할 수 있도록 해도 좋다.
그러나 가장 큰 학습효과는 이들을 의원직에서 도중하차하게 하거나 다음 번 선거에서 탈락시키는 것이다. 정당의 영향력을 줄이고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고 의원 중임제만 가능하도록 하든지 하여 그 신분에 대한 의구심을 항상 주어야 한다. 물고기가 못을 떠나면 안 되듯이, 이들도 국민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해야 한다. 법안 통과가 늦어서 나라가 결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회가 이런 상태면 나라는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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