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신년이 밝았으나 남북관계의 기상도는 여전히 잿빛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희망찬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새로운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했으나 이 같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답답하고 우울한 소식뿐이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게 된 원인은 굳이 따지자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북한에 책임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도 있고, ‘상생과 공영’정책이나 ‘비핵·개방·3000’에 대한 불신과 왜곡도 한몫을 했다. 핵문제를 놓고 임기 말 부시 행정부와의 흥정에 올인해 거둔 ‘전략적 성과’에 도취한 나머지 남한을 배제하거나 남한으로부터의 지원 없이도 생존할 수 있음을 확인받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오해하고, 왜곡하고, 폄하하는 과정에서 모든 남북 당국 간 대화는 차단됐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중단되고 금강산관광에 이어 개성관광도 전면 중단됐다. 육로를 통한 대북 접근이 엄격히 제한되고 개성공단의 운영도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게 남북관계의 실상이다.
올해 남북관계는 2008년의 연속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예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쉽사리 해소될 것 같지 않으며, 당분간 남북관계의 긴장과 갈등이 북한의 당면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북한 당국의 의중을 대변하는 ‘조선신보’는 지난해 말 북한의 10대 사변에 남북관계의 경색을 마지막 사건으로 선정한 바 있다. 미국 뉴욕필의 평양공연이 2위에,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의 방북을 6위에, 러시아와의 나진∼하산 철도 연결공사의 착공을 8위에, 그리고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9위에 각각 올려놓은 점을 보면 북한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비중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여하한 세계정세 변화에도 김정일의 영도하에 선군혁명을 고수해야 한다고 역설하는가 하면, 남북관계의 책임은 ‘속에 앙심을 품은’ 남한 정부 탓이라고 비방과 불만의 톤을 낮추지 않고 있다. 나아가 조평통 산하 조국통일연구원은 이명박 정부를 패당, 역적 도당으로 매도하는 등 극단적 언사를 동원한 ‘고발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의 대남정책 담당자들이 철직되고 군부 등 강성 수구세력들이 김정일 위원장을 ‘결사옹위’하는 가운데 개혁과 개방 대신 우물 안 개구리식 사회주의로 회귀하려 한다면, 북미관계나 우리를 포함한 주변 국제정세의 변화나 대응 여부에 관계없이 북한의 대남, 대외정책은 완고한 대결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의 수구적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요구대로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무조건 계승한다고 선언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당국 간 대화가 재개되고 화려한 남북교류가 봇물 터지듯 이어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니 남북관계의 경색은 좀더 지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말에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대로 북한 요인으로 야기된 남북 경색 시기에 이명박 정부는 좀 더 긴 호흡을 할 필요가 있다.
현 상황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거나 또는 무기력하게 대응하라는 말이 아니다. ‘획기적 전환’을 모색하라는 요구도 아니다.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올바로 정립하고 남북관계의 건전한 발전과 민족의 통일을 염두에 둔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라는 뜻이다. 새로운 의제들을 창조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남북관계의 담론구조를 주도해 나가라는 말이다. 북한의 2300만 동포를 끌어안을 수 있는 통일 대계의 초석을 진정성 있게 놓아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지상과제가 아니라면 2009년은 올바른 남북관계를 정립하는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08년 12월 31일자 세계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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