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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부동산 탈규제-失機의 함정 경계한다
 
2008-12-30 16:00:44

 

수렁으로 빠져드는 경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최근 발표되는 경기지표들은 주로 기록 경신용인 듯하다. 여기에 덧붙여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정책을 보면 앞이 깜깜해진다. 경제지표들이 현실을 반영하는 데 따르는 시차를 생각해보면 정부가 경기부양에 ‘올인’을 한다 해도 경기침체를 막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이 가장 고통 받을 일자리는 11월에 지난해 같은 달보다 7만8000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감소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

이 두려움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인 4조위안을 쏟아붓고 있고 신뉴딜을 선언한 미국은 GDP의 7%, 일본도 GDP의 6.6%에 달하는 재정을 경기활성화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이례적인 경기부양책이 급격히 추락하는 경기침체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런 상황 인식을 공유하고 정책으로 대응하는데 자꾸 정책의 엇박자가 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부동산 정책이다.

서울 강남 3개구 투기지역 해제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양도소득세 한시(限時) 면제 등 3대 쟁점 정책에 대해 16일에는 국토해양부가, 바로 다음날에는 재경부 차관이, 그 다음에는 장관, 여당의 정책위의장, 게다가 대통령까지 나서 차례로 말을 뒤집는 사태가 벌어졌다. 갈팡질팡했던 정책에 대한 변명은 연말연시 시장 상황을 봐가며 신중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책의 민감도가 가장 높은 부동산정책을 건드리는 데 신중하고 싶은 정부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가뜩이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살기가 어려워졌는데 가진 자를 위한 부동산 규제 완화는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또한 지금 규제를 너무 풀면 실물경제가 좋아질 때 부동산 가격 급등의 원인이 되는 냉온탕식 정책의 재탕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적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중산층 이상이 금융 부채의 상당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계대출의 3분의 2 이상이 부동산 대출이다. 중산층이 지갑을 여는 정책을 해야 실물경제가 살아난다. 외환위기 때는 그래도 실수요자가 있어 분양가를 낮추면 미분양이 해결됐지만 지금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경기회복 이후의 부작용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모르는 바 아니나 갈팡질팡하는 정책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금융 부실화로 이어지면서 연쇄 충격을 일으키게 되며 이것이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분양 누적이나 고분양가와 관련해서는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지만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좀더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급감하고 있는 수출과 기업들의 연이은 도산, 소비와 투자 위축에 부동산 가격 급락까지 겹친다면 총체적인 경제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부동산 3대 쟁점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다소 심리적으로 가격 상승의 기대감을 줄 수는 있겠으나 경기침체의 골이 너무 깊어 급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지체하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등 남아 있는 규제의 완화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금은 전시(戰時)다. 원칙을 지키면서 더 빠르고, 더 과감하게 대응해야 살아남는다. 정책도 경쟁이다. 다른 나라보다 늦게 하거나 시장이 알아차리면 쓸모가 없다. 그래서 정책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실책보다 실기가 더 나쁘다는 말이 나온다. 당·정·청이 지금처럼 제각각 딴 목소리를 내면 실책보다 나쁜 실기의 함정에 빠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이 글은 2008년 12월 26일자 문화일보 [포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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