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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실] 안이한 경제위기 대응
 
2008-12-17 15:45:52

 

이번 주 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8000억달러 규모의 대출지원책을 발표하고 씨티은행에 200억달러 추가 지원을 결정한 것은 정말 특단의 대책이다. 이 중 6000억달러는 주택시장 지원에, 2000억달러는 소비자 및 중소기업 대출 지원에 사용된다. 이는 지난 번 재무성이 발표한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과는 별도의 추가적인 지원이기도 하지만 돈의 성격이 매우 다르다.

FRB가 지원하는 자금은 본원적 통화에 해당되며 재정에서 나가는 돈과는 차원이 다르다. 교과서 이론대로라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의 중앙은행이 통화공급을 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인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보다 미국이 물불을 안 가리며 구제책을 내놓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이미 우리 경제는 최악의 상황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이 빠르게 진행되며 주식, 펀드,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폭락하고 소비가 꽁꽁 얼어붙었다. 동네 구멍가게는 말할 것도 없고 불황을 모른다는 백화점과 할인점까지도 불황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악화일로를 겪는 것은 해외발 경기 악화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우리의 서투른 대응도 한몫을 했다. 아무래도 지난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 기업들이 부채 비율이 과다하고 정부의 외환보유액이 바닥나서 외채를 갚을 능력이 안 되어서 부도가 나는 상황은 아니다 보니 정부나 기업, 금융기관들이 외환위기 때보다 문제 해결에 대한 절박성이 약했다.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 국민, 정치권이 모두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단결심이나 책임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더 두렵다. 세계 경기와 국내 경제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 주요 국가의 성장률이 이미 마이너스로 돌아섰으며, 이에 따라 우리의 수출도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보수적인 한국은행마저 올해 4분기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기 선행지표 중에서도 가장 선행지표인 국내 기계수주액과 건설수주액은 이미 9월에 전년 동월 대비로는 각각 33.4%와 40.4%나 줄었다. 이대로 가면 기업 도산이 줄줄이 이어지고 대량실업이 발생했던 외환위기 때의 상황이 재연될 것이다. 이미 10월 기준으로 일자리 증가 수가 전년 대비 70%나 줄었고 임시직 일자리가 24만개나 줄었다. 중산층과 서민의 고통이 느껴지는 숫자이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선제대응을 과감하고 충분하게 하라고 한결같이 주장해 왔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찔끔찔끔 내놓는 대책들은 포장은 긴급대책이지만 내용은 한물간 누더기 대책이다. 게다가 한발짝 늦어 효과는 반감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민간에서는 각자 살길을 찾아 허리띠를 졸라매는 수밖에 도리가 없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재정 지출을 늘리라고 입으로만 떠들 뿐 정작 재정 지출을 신속하게 하는 데 필요한 정책 조율은 하지 않고 있다. 이 정도의 긴박한 경제상황이면 여와 야가 있을 수 없다. 정부가 긴급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대부분의 재정지출계획은 국회의 동의가 없으면 시행이 안 되는 것들이다. 현재 국회는 정부가 내놓은 수정예산안을 가지고 심의를 하고 있다. 한 줄, 한 줄 세심히 보고 국민의 세금이 헛되이 쓰이지는 않도록 재정 낭비요인을 찾아내야 한다.

새 대통령이 아직 취임도 안 했는데 특단의 대책을 내놓는 미국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재정지출이 소비와 투자를 진작시킬 수 있는지 정부와 정치권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만큼은 정기국회 회기 내 예산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비경제적인 쟁점에 시간을 허비할 만큼 현재 경제여건이 한가하지 않다.


 

♤ 이 글은 2008년 11월 27일자 세계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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