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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인] 박사의 나라
 
2008-11-26 13:50:11

 

하버드대 의대 출신으로 ‘쥬라기 공원’의 원작자이자 할리우드 최고의 아이디어뱅크로 알려진 마이클 크라이턴이 지난주 암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처음에 소설로 나왔다가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진 ‘떠오르는 태양’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데 거기에 나오는 대화 한 장면이 꽤 인상적이다. 누군가가 세계에서 인구 대비 박사학위 소지자가 가장 많은 도시를 물었다. 이에 대해 상대방이 뻔하다는 듯 “보스턴”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아니야, 한국의 서울”이라고 고쳐 주었다.

실제 통계상으로 그런지는 잘 모르나 적어도 기분으로는 퍽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고학력사회가 아닐까 싶다. 금년도 대학 진학률은 83.8%에 이르러 작년 기록을 깼다. 1970년에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이 26.9%였고, 현재 주요 선진국이 50% 내외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위 대학교육 혁명이다. 대학교육이 이처럼 보편화되다 보니 연쇄반응으로 대학원이 문전성시(門前成市)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직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추세와 더불어 요즘에는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박사가 되기 위해 돌연 학교로 유턴하는 일도 다반사다.

학위가 인격-신분의 후광으로

최근 우리나라는 박사 양산(量産)체제를 갖추었다. 1975년에 994명이던 전체 박사학위 취득자 수, 그리고 인구 1만 명당 0.3명이던 박사학위 취득자 수가 2007년에는 각각 9669명과 2.0명으로 대폭 늘어났다. 박사 실업자의 재고가 매년 쌓여가도 박사 사회로의 행군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높은 학력이 취업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이른바 ‘학력의 역설(paradox of schooling)’도 박사 지망생 당사자들의 마음을 쉽게 돌리지는 못한다. 박사가 더 흔해질수록 박사학위가 또 하나의 ‘스펙’(specification)으로 간주되는 악순환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래서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박사 개그맨도 있고 박사 가수도 있는 것이 우리나라다. 평범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형설지공(螢雪之功)으로 박사학위를 따냈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도 희귀하지 않다. 하긴 정부부처 5급 이상 공무원 가운데 11.8%가 박사이고, 열 명 중 넷이 석사라고 하지 않는가. 여기에 급증하는 명예박사와 적지 않은 가짜박사까지 합하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박사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박사학위의 의미는 대학이나 연구소 등 유관업계에서나 필요할 법한 면허증이나 자격증 정도를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박사의 가치를 폄훼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유교문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배우고 때로 익히는 가운데 학위까지 얻는다면 더욱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박사의 사회적 비중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한국적 박사문화가 결코 최선이나 최상은 아니다. 학문보다는 학위가 중시되고 학위가 본래의 제한적 용도를 벗어나 인격적 또는 신분적 후광효과도 발휘해야 된다는 인식이라면, 그것은 배움과 지식을 남달리 귀하게 여겨왔던 우리의 역사적 유산을 이 시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처사가 결코 못 된다.

능력이나 실력을 뒤로한 채 학위를 앞세우는 현상을 영국의 경제사회학자 로널드 도어는 ‘학위병(the diploma disease)’이라고 불렀다. 후진국일수록 취업이나 승진 혹은 급여를 결정할 때 학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는 입으로는 선진화를 외치면서도 몸은 바로 이런 후진국형 풍토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그리고 학위병은 유교적 학문숭상의 논리에 가려 제대로 진단조차 되지 않고 있다.

장인-직업정신이 존중 받아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의 다원화와 실용화다. 그리고 모든 직업과 직군(職群)이 각자 나름의 치열한 프로페셔널리즘을 정립하는 일이다. 또한 유형의 박사학위가 아니라 무형의 장인정신과 직업정신에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희망을 걸어야 한다. 박사라고 해서 반드시 다다익선(多多益善)은 아니다. 다다익선이라면 오히려 성실하고 유능한 미국의 ‘배관공 조’(Joe the Plumber) 쪽이다. 다다익선이라면 오히려 평생 동안 오직 한 우물만 파는 일본의 ‘미스터 초밥왕’ 쪽이다.

 

♤ 이 글은 2008년 11월 12일자 동아일보[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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