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힘의 원천은 다민족, 다문화 그리고 그것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용광로임을 알 수 있었다. 오바마 신정부 등장이 한반도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국내에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후보 시절 북핵 협상과 관련해 6자회담 틀에서 북미 직접협상을 적극 추진하고, 필요하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에 나설 뜻임을 밝혔다. 그러나 북핵문제와 관련해 다소 모순된 견해를 개진하기도 했다.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적극 전개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핵확산방지협정(NPT)을 위반하는 국가에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드러낸 바 있다.
오바마 진영의 외교안보팀이 클린턴 정부의 대북 노선을 계승한다고 보면, 어떤 의미에서는 정권 말기 클린턴 대통령 방북이 제기되던 시점의 정책이 재추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있다. 오바마 차기정부의 대북 정책이 유화 일변도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페리 프로세스로 대변되는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계선(redline)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부시 정권과는 달리 존재했으며, 이를 넘을 경우에 대비한 계획(plan B)도 갖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한국정부는 클린턴의 대북 정책이 너무 유화적이라고 비판했지만, 막상 군사적 행동까지 고려하는 초강경 대응의 모습을 띠자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오바마 차기정부의 대북 정책은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목표로 외교를 통한 해결을 적극화하지만, 북한의 일탈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동원하는 선일 것이다. 방법론에서는 유연하지만 비핵화 원칙에서는 공화당보다 훨씬 엄격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 틀을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오바마 정부 출범에 즈음하여 대포동미사일 발사, 2차 핵실험 위협 등 벼랑끝 외교를 재가동하여 6자회담을 무기력화하고 북미 양자구도를 끌어내려 할 수 있다. 더욱이 ‘통미봉남’ 전술도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는 북미 대화와 남북 대화가 동시에 진행돼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한다. ‘통미봉남’이든 무엇이든 간에 북미 대화를 통해 핵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한국으로서는 불리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북미 대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북한의 눈높이에서 무리하게 남북 대화를 진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더욱이 미국에 대해 속도조절을 운운할 필요도 없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역할이 없이는 안 된다. 북핵 협상이 잘 진행되어 핵폐기 단계로 진전될 수 있다면, 결국 대북 지원이 가능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며, 특히 대규모 지원 의지를 갖고 있는 국가는 한국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오바바 차기정부도 한국과의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과 협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 북한과 밀도 높은 협상을 전개하겠지만 한국의 이익을 비중 있게 반영하고 공동 조율된 정책에 입각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한국과의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될 것이다. 오바마 차기정부 인수위원회에서 대북 정책의 전면 검토가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외교팀은 우선 한국과 정책조율 과정을 거칠 것이다.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형성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과 정책 방향을 반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핵 없는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한미 간의 조율된 대북 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2008년 11월 7일자 세계일보[릴레이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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