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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수도권-비수도권이 싸울 때인가
 
2008-11-10 09:29:30


'하루 생활권' 비좁은 나라
지역이해 가르는 건 당찮아

요사이 수도권 규제 완화를 두고 수도권과 지방의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이 벌이는 싸움을 보면 옛날 장자(莊子)가 비유하던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중국 전국시대 위 혜왕이 제(齊)나라를 치려 하자 '대진인'이라는 도인이 말한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觸)씨의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씨의 나라가 있었는데 둘이 서로 영토를 늘리겠다고 전쟁을 일으켜 수만 명이 죽고 상하는 비극이 났다."

장자의 우화는 광대한 우주에서 본다면 중원 한 모퉁이에서의 싸움이 실로 보잘것없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좁은 나라에서 지역주의 정치집단들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으로 비유해야 할 것인가?

한국은 10만㎢도 못 되는 땅에 4800만 인구가 밀집해 사는 나라다. 수도권과 전라·경상도가 그저 몇 시간이면 오가는 '하루 생활권'이라 도대체 누가 발전하면 누가 죽는다는 식의 논쟁이 가당치 않은 국토 조건이다. 그러나 지난 노무현 정권하에서 국토 균형개발의 이름하에 행복도시, 16개나 되는 기업도시, 혁신도시들을 만들고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니 수도권 규제니 하며 지역 간 이익분쟁을 일으켜 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기왕에 저질러진 국토사업을 '5+2 광역경제권'으로 재편해서 적극 지원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그 와중에 세계 경제위기의 쓰나미가 우리 경제를 휩쓸었다. 한국 경제가 이 난국을 넘기려면 기업투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절실한 과제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심장부인 수도권 규제를 풀 수밖에 없다.

수도권 규제는 실상 진작부터 재고해야 할 문제였다. 이것은 "수도권 발전이 비수도권 투자를 빼앗아간다"는 폐쇄국가의 논리에 입각한 것이다. 2003~2007년 경기도 기업 141개가 지방으로 이전한 사이 1만6738개가 해외로 옮겨갔다고 한다. 글로벌 경쟁시대에는 세계 각 도시와 치열하게 경쟁해서 산업과 사람을 끌어들일 힘을 기른 도시에만 생존의 길이 열린다. 지자체가 수도권을 적대시하고 그 희생 위에 살려는 전략으로 이런 도시 경쟁력을 기를 수 있겠는가?

지역 이해(利害) 관계자들도 21세기 지구촌 경제전쟁의 주 무대가 대도시 간의 싸움임을 인정해야 한다. 곧, 우리 수도권이 대도시 경쟁력을 키워 뉴욕, 도쿄, 상하이, 홍콩과 대항해 세계의 자본, 기업과 신성장 동력을 끌어들일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이 발생시키는 투자와 개발이익은 결국 국토 전역에 수요, 생산 및 인프라 건설 재원으로 파급, 확산될 것이다. 이렇게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동맹관계임을 인정함으로써만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相生)하는 국가전략이 세워질 수 있다.

현재의 지구촌 경제위기는 세계경제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이것은 몇 년, 몇 십 년이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이고, 새로운 승자와 패자를 만드는 시기가 될 것이다. 한국은 노령화사회, 성장잠재력 상실, 에너지 낭비구조, 국제수지 적자 등이 고착화되어 울고 싶을 때 뺨 맞는 꼴로 당한 것이 이번의 금융 경제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기회를 활용해 신성장 산업에 투자하고 에너지절약구조를 만들고 고질적인 대일산업 의존구조를 탈피하고 교육, 의료, 법률, 기타 서비스산업의 후진적 구조와 제도를 혁파한다면 마치 10년 전 IMF 외환위기 때처럼 우리는 국가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중대한 시기에 정말 필요한 것이 정치권의 확고한 리더십이다. 경제위기를 맞아 두려움에 떨고 우왕좌왕하는 기업에게 확실한 방향타를 보여주어 그들의 자신감을 보태줌이 국가의 역할이다. 이런 시국에 수도권 규제 해제 하나 때문에 정치권 총체가 갈라져 달팽이 뿔 위의 밥그릇싸움을 하는 국가가 됐다. 장래 선진국은커녕 세계의 주변부 삼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는 나라다. 그 책임을 지금 여·야당 지도자, 국회의원, 지자체장들이 져야 함은 너무 당연하다.

 

♤ 이 글은 2008년 11월 9일자 조선일보[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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