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혹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정부가 지난주 말 10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시장에 들어 붓는 실물경제 안정대책을 마련하고,이와 더불어 1300억달러를 동원하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는데도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다급해진 정부는 수도권 내 일부 주택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 기준을 조정하고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조치를 내놓았다. 그동안 시장에 끌려 다니면서 찔끔찔끔 대책을 내놓아서 위기를 키웠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던 것에 비하면 진일보한 정책이다. 지나고 보면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을 조기에 강도 높은 대책이 나왔으면 중소기업의 도산과 서민들의 고통이 이렇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혈세를 들여 시장을 교정하는 일이라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다. 사실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좋은 정책과 나쁜 정책을 가를 여유도 없다. 과감하고도 빠른 대응으로 시장을 압도해야 성공한 정책과 실패한 정책이 있을 따름이다. 그럼 어떤 정책이 위기 발생 시 성공한 정책일까. 여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1930년 이래 이번 금융위기 전까지 미국 금융사상 최대 규모였다고 평가되는 ‘저축대부조합(S&L) 위기 극복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초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인상되자 저축대부 회사들이 고금리의 단기성 예금을 끌어들여 고유 업무였던 주택저당대출 등 기존의 저금리성 장기대출을 운용했다. 이로 인해 예대 마진이 축소되어 수지가 크게 악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 의회는 저축대부 회사들의 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1980년 예금금융기관 규제완화 및 통화관리법(DIDMCA)과 1982년 예금취급금융기관법(DIA)을 제정하여 규제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건전성 감독은 강화되지 않은 채 규제가 완화됨으로써 예금자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증가하게 된 점은 현재 금융위기와 닮은꼴이다. 실패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원인이 규명돼야 하겠지만, 이번 금융위기도 은행의 잘못된 결정과 이에 대한 규제 실패 때문에 일어났다. 최고경영자(CEO)에게 관대한 보상 시스템을 비롯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이끌고 있는 잘못된 기업 지배구조도 한몫을 했다. 투명하지 못한 스톡옵션은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며 많은 부실과 문제를 일으켰다.
이제부터는 성공한 정책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은 저축대부조합 위기 극복 과정에서 부실금융기관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규명함으로써 책임 당사자인 개인에 대해서까지 처벌을 강화해 책임경영 체제를 확립했다. 더욱이 금융기관이 불법·부당행위를 하여 제재받은 사실을 주기적으로 공표하여 예금자들이 금융기관을 이용할 때 참조하도록 하였다.
금융기관 부실화에 대한 책임 추궁을 임직원 외에도 외부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 등 외부 독립 계약자까지 확대하여 투명한 감사와 예금보험기금 손실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1995년 말 현재로 저축대부조합 위기 극복 비용을 계산하였는데, 직접 사용된 공적자금은 물론이고 공적기관으로부터 받은 보조금에서부터 세금 혜택 추정치와 재무성 차입을 비교해 부실정리채권에서 고금리를 지급함에 따라 늘어난 이자비용에 이르기까지 센트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해서 발표하였다.
지금 우리는 금융위기라는 불을 끄는 데 정신이 없다. 심지어 11년 전 이미 커다란 화재를 경험해 진압한 적이 있으면서도 마찬가지로 당황하고 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지난 외환위기 당시 경황이 없어서 혈세를 써가며 빚잔치를 벌인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사후 대책에는 소홀했다. 사후처리가 분명하다고 국민이 신뢰한다면 정부 정책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이 글은 2008년 10월 23일자 세계일보[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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