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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근] 군필자 가산점과 건군 60년
 
2008-10-14 10:20:19

 

병역법 개정으로 여성의 군복무 의무를 정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다. 독일 헌법은 ‘만 18세 이상의 남자’만으로 한정하지만, 한국 헌법은 군복무 의무를 포함하는 국방의무의 주체를 ‘모든 국민’으로 정했다. 남자에 한한다든지 여자는 제외한다든지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독일 헌법은 방위사태 등의 일정 조건에서는 만 18세 이상 55세까지의 여자도 법률에 의해서 또는 법률에 근거해 징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집총복무는 안 되는 것으로 한다.

헌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렇게 간단하고 정직한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군복무를 필한 자인 제대군인이 공무원 채용시험 등에 응시한 때에 과목별 득점에 과목별 만점의 5% 또는 3%를 가산하는 제도는 인정될 수 있는가. 헌법재판소는 부인한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조문의 의미를 아래와 같이 이해하면서, 이를 적극적 보상조치를 하는 것으로 보고 헌법에 근거한 제도가 아니라 한다.

헌재는 “국방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하고 있는 이상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 마땅히 해야 할 이른바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라면서 “병역 의무를 이행한 사람에게 보상조치를 하거나 특혜를 부여할 의무를 국가에 지우는 것이 아니라, 법문 그대로 병역 의무의 이행을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데, 요령부득이다.

헌재의 이런 결정은 헌법을 문자 그대로 읽지 않은 탓이다. 군 복무로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헌법과 헌재의 말인데, 병역의무 이행으로 공부하지 못하고 응시하지 못한 3년여 기간이 과연 제대군인에게 ‘불이익한 처우’의 상황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고 헌재는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참고인 진술을 받아 가면서 한번이라도 물어봤는가. 불이익한 처우라는 헌법의 문언을 그렇게 소홀히 다루었으니 오히려 가산점 부여가 제대군인에게 특혜를 주는 위헌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제대군인에 대한 가산점 부여가 불이익한 처우를 시정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면 되는 이 간단한 문제에 대해서, 헌재는 “전체 여성 중의 극히 일부분만이 제대군인에 해당될 수 있는 반면, 남자의 대부분은 제대군인에 해당하므로 가산점제도는 실질적으로 성별에 의한 차별”이라는 등으로 ‘남자 대 여자’, ‘신체 건장한 남자와 그렇지 못한 남자’, ‘제대군인 대 병역면제자와 보충역 복무자’의 싸움으로 그 물꼬를 돌려놨다.

헌재는 잘 지내던 한국인 남자와 여자 사이를 굳이 갈라놓으면서 이를 평등의 문제로 바꾸었다. 수험생이 주어진 문제를 자기 맘대로 바꿔 답을 쓰다 영점 처리를 받은 학생처럼 말이다. 가산점 부여가 불이익한 처우를 시정하는 것이냐는 문제를 멋대로 남녀차별의 문제로 돌려놓고 가산점을 주는 것이 남녀차별이라고 답한 것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1979년에 제대군인의 공직 우선 채용을 정한 매사추세츠주 법이 연방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보호 조항의 위반이 아니라고 판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1919년 이래 공직 채용 우선 규정은 한국전쟁의 경우에서도 그러했듯이, 전쟁이 있을 때마다 수정돼 왔음에도 이 법의 목적은 제대군인의 보상에 있지 여성 차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10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헌법을 경시하고 자기류의 허상과 이념으로 우리의 공동체적 양심이 무뎌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 과정에서 헌재도 자유롭지 못했다. 군필자 가산점 위헌 결정도 그 한 가지 예이다. 헌법을 안 보고 시류를 좇은 것이다. 건국과 건군 60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떤가. 아직도 ‘한국’이란 공동체적 관점이 아니라 보헤미안적 나르시시즘에서 유영하고 있다. 가산점 부여는 그 탈출의 시작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2008년 10월 13일자 세계일보[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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