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위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 달 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피할 수 없었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식은 폭락했다. 특히 원화 가치는 단기간에 20% 넘게 급락해 2∼8% 떨어진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주요 통화와 현격한 대조를 이뤘다. 원화 가치가 다른 나라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직 낙하하고 경제위기의 공포감이 번진 근본 이유는 외풍에 취약한 시장구조로 작은 쏠림에도 시장이 쉽게 흔들린 까닭이다. 이 같은 경제 구조적인 요인 이외에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작동한 듯하다.
우선,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금융정책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끼리 엇갈린 발표를 하고, 설익은 대책을 남발함으로써 정부 불신을 되레 키웠다. 더구나 정부 내에 금융위기에 총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도 불안을 부추긴 요인이다.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현 정부의 경제팀이 위기 대응에 대한 기본 스탠스 자체가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표류하는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가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느닷없이 국민의 실생활과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책들을 서둘러 내놔 스스로 리더십을 훼손하고 있다. 여기에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정파적 이익에만 매몰된 정치권이 국민의 불안심리를 증폭하고 있다. 국감을 통해 정부를 견제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 당 흠집내기와 한탕주의식 깜짝쇼에 혈안이 돼 있다.
세계 경제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초긴장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은 비장한 각오로 국정에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경기침체를 반영한 현실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국민에게 “내년 하반기에 경제가 나아질 것이다”는 장밋빛 전망보다는 현 상황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줘야 한다. 그때그때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는 즉흥적이고 단기적인 처방이 아니라 ‘재정 건전화’와 같이 멀리 보면서 길게 호흡하는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특히, 대통령은 시장과 정치권에서 신뢰를 상실한 현 경제팀을 즉시 교체해야 한다. ‘사람을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상징적인 조치로서 경제팀을 교체해야 한다. 실효성 여부를 떠나 정부가 모든 수단을 강구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라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참에 경제 부총리제를 부활해 효과적이고 신속한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총괄적으로 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 아울러 국민이 공감하는 단호한 문책 인사로 그동안 실추됐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당장, 거짓과 비상식적인 행보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기관장과 공직자들에 대한 신속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여야 정치권도 ‘깽판 국감’을 중단하고 ‘경제 살리기 국감’으로 즉시 전환해야 한다. 격식과 정파적 이익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역사적인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전제 조건은 정부 여당이 야당과의 지속적이고 솔직한 의사소통을 해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대통령과 여야 대표들이 회동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례 없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한국 경제가 이 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강하게 거듭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2008년 10월 13일자 세계일보[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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