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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승] 인간적인 삶
 
2008-09-17 15:59:13

 

나이 들면서 기억력이 점점 떨어진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더욱 또렷해지는 것은 유전자(DNA)에 대한 인식이다. 모든 삼라만상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일정한 규칙처럼 인간에게도 누구나 다 자기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23쌍의 염색체를 간직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고 성장한 아들에게서 내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나는 내 인자(因子)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궁극적으로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과 또 자연이 나의 확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아온 축에 든다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 인간적인 삶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생’이라는 엄숙한 흐름 앞에 나란 존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인가?’라는 문제를 20대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모색하게 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삶과 연관해 ‘생명체’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그 답이 쉬울 수도 있다. 생명이 있기에 삶이 있으며, 생명의 본질이 있으므로 그에 따른 삶의 형태와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나이 들면서 점점 또렷해지는 인식은 DNA와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DNA다. 점점 퇴락해 버리거나 조금씩 진화해 나갈 뿐이다. 빗물이 강물에 떨어져 흔적이 없어 보여도 물의 본질은 그대로인 것처럼, 또 강물이 흘러 바다가 되면서 강물은 흔적도 없지만 여전히 물인 것처럼 기본 인자는 변하지 않았다.

정말 인생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도 세상을 살면서 사춘기 소년처럼 투정을 해본다. 그리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실망을 하게 되면 혼자서 몹시 투덜거린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매번 속상해하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것이 삶이었다.

삶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침에 밥을 먹고 점심이 되어 다시 점심밥을 먹는다. 또 얼마 지나 저녁이 되어 배가 고프면 저녁밥을 먹는다. 그것이 삶이었다. 우리가 하루 세끼 같은 식사를 하는 것 같지만 같은 식사이면서도 또 다른 것이듯 나날이 다른 삶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똑같이 반복하면서도 그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내가 계속 실망하면서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사이에 애정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내 속에서 ‘용서’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이 세상에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 어떤 나쁜 한 사람의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 속내는 나쁜 면보다 좋은 면이 많았다.

저널리스트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는 저서 ‘단순하게 살아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사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안에 담겨진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찾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모든 것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복잡한 삶 속에 허덕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결국 삶 속에서의 단순함이란 순수나 솔직함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삶이란 기본에 충실하고 자신이 지닌 장점과 가능성을 발견·계발해 나가는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고 근검과 절제로 이루는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인간적인 삶의 요체이기도 하다.

인생이 뭐 대단할 것도 없다. 어느 날은 의기소침하다가도 다시 친구가 그리워진다. 어느 날은 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끌어안고 다 포용하는 마음으로 나를 비운다. 오늘도 ‘나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나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작 깨닫는 것은, 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정말로 많은 사람들의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 이 글은 2008년 9월 16일자 한경비즈니스[경제CEO ESSAY]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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