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초점] 자동차 내비, 인생 내비, 경제 내비
우왕좌왕 한국 경제 목적지부터 정해야
강석훈·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내비. 흔히 사용하는 자동차 운전용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줄임말이다. 최근 몇 년간 내비의 판매량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 연간 31만대 수준이던 내비의 국내 판매량은 2007년에는 205만대로 늘어났다. 2년 사이에 무려 6배가 넘게 증가하였다. 통계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2008년에 내비를 장착한 차의 비율은 약 세 대 중 한 대이고, 2010년에는 약 두 대 중 한 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비 장착률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내비 장착률의 증가 속도도 세계적으로 빠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내비를 장착한 차가 많으며 또한 왜 이렇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길눈이 어둡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나라의 도로가 유난히 복잡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생각하는 것을 귀찮아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경제학자는 내비의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이라고 응답할 것이다.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과 부모님을 찾아가는 많은 차 안에서도 어김없이 내비가 작동하였을 것이다. 내비가 우회전하라고 하면 우회전을 하고, 좌회전하라고 하면 좌회전을 한다. 그리고 때로 안전운행 구간이라며 속도를 몇 킬로미터 이하로 줄이라고 지시하면 착한 학생이 선생님 말씀을 따르듯이 그 말을 고분고분 따른다. 내비의 기능이 어디 그뿐인가? 요즘의 내비는 원하면 TV가 되기도 하고 또 노래방 기계가 되기도 한다. 단순히 길 안내자일 뿐만 아니라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되는 셈이다.
사실 우리가 추석이 되면 부모님을 찾아 천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찾아 뵙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 인생의 내비였고 또한 현재도 내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철모르던 어린 시절에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좌표를 설정해 주셨다. 빠른 속도가 필요할 땐 빠르게 뛰라고 하셨고 여유가 필요한 시점에서는 조금 쉬라고도 하셨다. 때론 전진만이 아니라 후진의 지혜도 필요함을 말씀하셨었다. 이번 추석을 맞이하여 다시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가는 이 길이 즐겁고 감사한 이유는 바로 다시 부모님이라는 인생의 내비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을 찾아 뵈러 가는 동안 우리 마음이 온통 기쁨만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아니 그 기쁨보다도 더 크게 우리 마음속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불안감의 한가운데에 우리 경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경제는 앞만 보고 달렸지만, 지난 10여 년은 말 그대로 우왕좌왕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적지 않은 시간들을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목적지를 정하느라 허송세월하였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지금조차도 아직까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듯하다. 더욱이 그 길을 함께할 정부는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믿음직한 내비가 되지 못했다.
우리 국민들은 목적지가 정해지고, 목적지로 가는 길이 제시되면 그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는 무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마치 목적지도 모르고 가는 길도 모르는 상태에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는 내비의 말을 들으면서 불안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심정이다. 제대로 된 경제 내비를 만나면 자동차에 도로용 내비를 장착하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그 내비는 우리 국민들에게 장착될 것이다. 자동차용 내비의 판매증가율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믿음직한 경제내비에 대한 지지율은 올라갈 것이다.
이번 추석은 자동차용 내비와 인생의 내비에게 감사하는 시간이다. 이와 함께 추석 보름달이 뜨면 우리 정부가 친절한 안내자도 되고 든든한 동반자도 되는 경제내비가 되기를 빌어 보련다. 그리하여 내년 추석에는 자동차내비와 함께 부모님이라는 우리 인생의 내비, 그리고 우리 경제를 이끄는 경제내비를 칭송하고 감사해 보리라.
♤ 이 글은 2008년 9월 12일자 조선일보[경제초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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