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부터 서울대 공대의 많은 학과가 서울시내 대부분의 약대보다 합격선이 낮다고 해서 충격을 받았다. 또 서울대 재학생의 설문에서 법대와 의대 학생만이 전과할 뜻이 없고 전공에 만족한다는 조사 결과가 보도된 적도 있다. 대학생들이 현실과 미래를 정확히 읽을 정도로 충분히 똑똑하다는 방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공계 출신이 사회로 진출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전문가로 기술사와 변리사가 있다. 기술사는 대학졸업 후 해당분야 기사자격과 4년이상의 경력이 있어야 응시자격이 주어지고, 논술시험, 면접시험을 거쳐 자격을 따게 되는데 합격이 쉽지 않다.
엔지니어의 최고 지위인 기술사는 우리사회에서 어떤 위상을 갖고 있을까. 전문가 제도로서의 기술사에는 여러 문제점이 있다. 우선 기술사법에는 다른 전문가법에는 있는 고유 업무영역 규정이 없다. 즉 기술사가 아닌 사람이 기술사업무를 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변호사 업무를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기술사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정부 부처 간 이해다툼 때문에 기술사 선발은 노동부에서 주관하고, 기술사의 관리와 활용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주관토록 이원화되어 있다.
변리사는 특허, 상표, 디자인 등 산업재산권에 관하여 특허청과 법원에 대한 대리 업무를 한다. 산업재산권 분야의 변호사 역할이다. 변리사 업무 중 비중이 높은 특허는 기술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이학·공학 지식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변리사 시험은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면 합격하기 어렵다. 매년 200여명 선발에 이공계가 아닌 사람이 1∼2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이공계 분야 전문자격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런 변리사 자격을 변호사는 자동으로 얻는다.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은 서류를 갖춰 특허청에 등록만 하면 변리사가 된다. 변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법시험을 더 권해야 할 형편이다. 사법시험과목과 변리사시험과목이 일치하지도 않고, 변호사자격이 있으면 변리사 업무를 수행할 능력까지 자동으로 생길 리가 없는데도 현실은 그렇다.
또 변리사법에는 산업재산권에 대한 소송대리권이 규정되어 있음에도 산업재산권 침해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실무상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필자도 법원에 소송위임장을 내고 대리인으로 변론을 시도해 봤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면서도 법원은 어느 법령 어느 조문 해석상 소송대리권이 없다고 명시해 주지 않는다. 하긴 변리사법에 명확하게 규정된 내용을 견강부회하여 밝히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기술사, 변리사제도의 제반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이공계 출신이 직면한 기막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비록 이공계 자질이 있는 학생이라도 법대나 의대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누가 자기의 인생을 희생해 가면서 사명감으로 이공계로 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공계 기피현상은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문제이다.
철학자 칼 포퍼는 생물 진화론이 사회의 진화에도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사회가 그 내부에 안고 있는 오류나 모순을 제거함으로서 진화해 나가면 생존하고, 진화에 실패하면 그 사회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회의 오류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오류는 계속 발견되겠지만 지속적으로 제거해 나갈 때 환경에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다. 그것이 진화론이 던지는 명제이다. 이 명제 역시 오류 중 하나일 뿐인가? 그렇다면 이것마저 제거해 버리자.
고영회(성창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 이 글은 2008년 9월 8일 국민일보 [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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