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0여년 김일성, 김정일을 김일성, 김정일이라 대놓고 부르질 못했다.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 산업화의 주역인 박정희 대통령을 타기(唾棄)하듯 이승만, 박정희라 예사로 부르면서도 김일성에게는 주석, 김정일에게는 국방위원장이라는 접미사를 반드시 붙이면서 정색을 하던 그런 시대에 그들을 직책의 호칭 없이 부르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법대 교수의 판단으로는, 그렇게 했다가는 명예훼손으로 걸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교수로서 참석하는 각종 세미나에서 또는 한때 비상임위원으로 일했던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회의에서 그리고 기타 애매한 사석에서 나는 그들을 아예 거명하지 않으려 애썼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하여 독립된 국가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어서, 국방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빼고 그냥 ‘김정일’이라고 부를 경우, 만일 그가 ‘남한’을 방문하기라도 한다면, 우리 형법 제107조에서 규정하는 ‘대한민국에 체재하는 외국 원수에 대하여 모욕을 가하거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는 조항에 딱 걸릴 것만 같았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인 유약한 지식인의 실없는 얘기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과거 유신 헌정의 시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그 직책 없이 ‘박정희’라 부르고 싶었던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으로 잡혀 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가졌으리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국가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국가보안법이 과잉으로 적용되던 때가 있었던 반면, 대한민국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하면서 국가보안법이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할 유물’로 매도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10년 정권의 교체 직후, 탈북 위장 직파 여간첩과 그 일당의 7년에 걸친 간첩행위로 체포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드러났다. 그 시작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2001년 10월 남파한 때부터다. 김대중 정부의 시기이다. 본격적으로 간첩 행위를 하면서 수사 당국의 내사를 받기 시작한 시점은 2005년부터다. 노무현 정권 때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법 제정, 사립학교법 개정, 신문법 제정 등에 올인하여 민심을 잃기 시작한 시기였다.
체포된 여간첩은 현역 육군 정훈장교를 포섭하여 인질로 삼았다. 장교의 나이는 27세이다. 얼마나 국가와 그 안전의 교육을 소홀히했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2002년 6월29일, 김대중 정부의 시기, 북한 경비정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도발을 격퇴한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6인 장병의 한 사람이 내가 재직하는 대학의 학생이었다. 그 학생 그 장병을, 국가의 이름으로 전사한 그 국군을 장사(葬事) 지내야 했던 바로 그날, 국민의 대표자이며 국군 통수권자인 일국의 대통령은 월드컵 결승전 참관을 위해 합동영결식 전날 일본으로 갔다. 식장에 대통령은 없었다. 국무총리도 없었다. 국방부장관도 없었다. 합참의장도 보이지 않았다.
여간첩에 포섭된 그 정훈장교는 2002년 당시 21세, 대학 1, 2학년이었으리라. 휘하 장병의 주검을 앞에 두고 이웃 나라의 운동장에 앉아 축구를 관전하는 대통령을 그가 보았다면, 훗날 그가 북의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을 알았을 때, 그의 머리와 가슴에 국가가 있었을까.
권위주의 정권에서의 국가보안법 오용은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과 법 개정으로 불식됐다. 이 법 자체를 문제 삼으면서 운위되는 양비론은 문제가 없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등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장병들에게 교육시켜야 할 때이다.
♤ 이 글은 2008년 8월 29일자 문화일보[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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